우리집 일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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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월×일
오늘 나는 왜 이렇게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덩그라니 집에 남편과 나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 가슴에 응어리를 남긴다. 자격지심일까. 새학기 준비한다고 외국으로 떠난 딸아이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우리집에는 삼남매가 있는데 막내가 딸이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부모 말을 잘 들었다. 그래서 부모 말이라면 무엇이건 옳은 것으로 알고 따랐다. 그러던 딸이 고교생이 되면서 갑자기 달라졌다. 외국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엄마 생각으로는 한국에서 공부해서 그저 좋은 신랑감 만나 행복하게 살면 어쩧겠느냐고 설득해 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시집가기 위해서 내 인생을 포기할수 없잖아요?』하면서 막무가내다. 부모 없으면 하루도 못살 것 같던 아이가 이렇게 달라 질 수 있읕까? 옛날에 아빠 앞에서는 하고 싶은말을 몇번씩이나 입속으로 연습하고도 끝내 말을 꺼내지 못했던 우리 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세대가 달라진 것인지, 마음이 늙어가는 것인지 서글픈 생각이 앞선다.
모르는 사이에 우리도 우리부모처렴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일까? 다 큰 자식들인데 늘 우물가에 선 것처럼 조심스럽고 안심되지 않는 것도 나이 탓이기 만일까? 이것도 다 부질없는 생각이기는 하다.
큰 아들은 벌써 대학을 마치고 방위병으로 가고 작은 아들은 대학에 다니다가 도중에 공군에 가버렸는데 이체 딸아이마저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가족수를 물어오는 이들에게마다 『자식이 셋』이란 대담을 흡사 죄인(?)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했던 것을 생각할 때마다 빈 집안이 더욱 썰렁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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