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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영화관’ 뜨니…비닐하우스가 ‘시네마 천국’ 됐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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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13일 오후 전남 고흥군 금산면 연홍도의 연홍미술관. 그림이 내걸린 벽면 한쪽 끝에 500인치 짜리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농사와 고기잡이 등 일과를 마친 주민들이 미술관 바닥에 편한 자세로 앉았다. 잠시 후 조명이 꺼지자 영화 ‘국제시장’이 상영됐다. 주민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대형 영화관과 맞먹는 크기의 스크린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선호남(55·금산면)씨는 “멀리 도시까지 나가지 않고도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마을회관·미곡창고도 영화관 변신
극장 없는 농어촌 주민들 반응 좋아
전남문화관광재단, 올해 사업 시작
연말까지 담양 등서 30여 차례 계획

영화관이 없는 전남 지역 주민들을 위한 ‘찾아가는 영화관’이 뜨고 있다. 평소 생업에 쫓겨 영화를 관람하기가 어려웠던 농·어촌 주민들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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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문화관광재단은 9일 “지난달 고흥을 시작으로 올해의 ‘찾아가는 영화관’ 사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까지 신안·화순·강진군 등에서 900여 명의 주민들이 5차례에 걸쳐 영화를 관람했다. 올 연말까지는 나주시와 담양·보성·영암군 등 지역에서 30여 차례에 걸쳐 영화가 상영된다.

전남문화관광재단은 영화관이 없거나 접근성이 떨어져 영화 관람이 사실상 불가능한 주민들을 위해 찾아가는 영화관을 기획했다. 각 시·군이 신청하면 날짜와 시간·장소를 정한 뒤 전문 업체와 함께 대형 스크린과 디지털 영사기, 음향 장치를 설치해 영화를 상영한다. 스크린을 펼칠 수 있는 공간만 확보되면 어디든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주로 학교 강당이나 마을회관이 활용되지만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소에 스크린이 설치되기도 한다. 비닐하우스와 미곡창고 등이다.

이 사업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주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영사기와 스크린만 설치되면 10대부터 70~80대 노인들까지 찾아와 영화를 관람한다. 이렇다 할 문화 생활을 하기 어려운 농·어촌 주민들로선 빼놓을 수 없는 여가 활동이 됐다. 전남의 경우 22개 시·군 가운데 목포·순천·여수시 등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에는 대형 영화관이 없다.

전남도가 예산을 지원하는 이 사업은 2014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주로 극장이 없는 농어촌 지역을 돌며 입소문을 탄 뒤 지난해부터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76차례나 운영될 정도로 영화 상영을 요청하는 곳들이 많았다. 이 기간 8645명이 영화를 관람했으며, 1회 평균 관람객은 113명이었다. 전남도는 올해 사업 지원을 위해 1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단순히 영화 상영에만 한정되지 않고 별도의 문화 프로그램과 연계해 치러지기도 한다. 마술이나 음악 공연이 대표적이다. 노환 등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은 노인들로선 한자리에서 여러 이벤트를 즐길 수 있어 만족도가 더 높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프로그램을 우수 사업으로 선정했다. 지난 2월에는 전국 시·도 및 시·군·구 워크숍에서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소개하기도 했다.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농·어촌 주민들에게 문화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남문화관광재단 오영상 사무처장은 “영화 관람을 원하는 주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겠다”며 “국악 등 음악 공연처럼 영화와 함께 선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늘려가겠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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