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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英정상 노타이에 슬리퍼신고 '휴일 회담'

중앙일보

입력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20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북한이 다자대화를 통해 북핵을 폐기할 경우 개방과 다른 체제로의 전환을 도와줄 의사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블레어 총리는 "이런 점에서 북한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이라크와는 같은 위기감이 있지만, 이런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위협을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다"고도 말했다.

블레어 총리가 언급한 '다른 체제로의 전환'이라는 표현에 대해 반기문(潘基文)외교보좌관은 "북한 정부의 체제 변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북한의 개혁.개방에 적극적 도움을 주겠다는 의미"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두 정상은 이날 슬리퍼를 신은 노타이 차림의 간편복으로 한옥인 상춘재에서 회담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회담 직전 환담에서 盧대통령은 "블레어 총리가 삼성테스코(양국 합작회사) 쇼핑몰을 방문한 것은 양국의 활발한 교류를 상징하는 것"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블레어 총리는 "영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삼성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회사며 많은 영국인이 삼성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선 적절치 못한 질문이 나오는 등의 해프닝으로 어색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초 盧대통령에게 질문을 하도록 약속했던 영국 ITN 방송의 기자가 돌연 블레어 총리에게 질문을 던진 것.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 문건을 정부가 각색했다는 BBC 보도의 취재원으로 지목됐던 무기전문가 데이비드 켈리(57)박사의 죽음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얼굴이 벌게진 블레어 총리는 "(영국)언론은 존중과 자제의 자세를 가져달라"며 "우선 독립적 기관의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 및 판단 뒤에나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기자는 "盧대통령에게는 질문이 없느냐"는 이해성(李海成)홍보수석의 확인에 "노 생큐"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한국 측의 모 방송기자도 盧대통령에게 대선자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盧대통령은 "야구할 때는 야구 얘기만, 축구할 때는 축구 얘기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오늘은 정상회담 중심으로 하자"고 양해를 구했다. 회견 후 청와대 측은 영국기자의 결례에 공식항의했고 영국 총리실은 문서로, 해당 기자는 구두로 사과의 뜻을 전해왔다.

한편 "영.미식과 유럽식 노사관계 모델 중 어느 것이 한국에 더 적합하냐"는 질문을 받은 블레어 총리는 "한국식이 최고"라며 "사회적 연대를 추구하고 21세기의 도전을 해결해 나갈 수 있게 유연한 노동력을 갖추자는 盧대통령의 접근 방식이 옳다"고 답했다.
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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