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했던 과거 역사 되풀이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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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홍종인<언론인>]필리핀의 대통령 선거결과가 부정부패의 장기집권자 「마르코스」에서 청초한 아줌마 「아키노」부인으로 판정이 나면서 「마르코스」가 재밤중에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는 그때, 필리핀이란 나라의 주인은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애국정열에 끓는 필리핀의 평범한 그 국민들임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의 어느 나라에 못지 않게 이웃나라의 급박한 정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신문·방송이 지면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 많은 보도기사 중에는 국적조차 분명치 않은 것들이 마구 섞여서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많은 독자들의 관심 속에는 엉뚱하게도 저 나라에서 생긴 일을 우리나라에 빗대두고 어떤 공통성이나 유사점을 찾아보려는 것 같은 경우를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은 국가적 신념도, 인간 고유의 개성을 제대로 키워 나가지 못한 무지·무자각에서 나오는 언동들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무심히 넘겨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는 시대와 지역을 달리 하면서도 단편적으로는 어떤 유사한 경우나 공통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두고 쌓이고 쌓인 많은 경험 속에서 사회공동체를 발전시켜온 나라와 그 국민은 자신의 문화와 아울러 자신의 성격을 담은 역사를 독자적으로 키워 나가게 마련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세계 역사 속에 발전시켜야할 것을 신념으로 하면서 피와 눈물의 역사를 곰곰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에 살아 있는 우리자신의 눈으로 보고 경험한 역사만을 되돌아본다 해도, 저 일본의 악독한 침략의 기록은 더 말할 것 없고 극히 최근이라고 말할 수 있는 6·25의 북한 공산침략으로 3년간 3차대전의 시발과 같은 대 전란 속에 한반도는 온통 불바다로, 또 피의 냇물이 되고 말았던 그 경험을 지니고 있다.
오늘 이때 그 날의 기억, 그 때의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는 공산도당은 우리의 원수가 된다 하더라도 다시는 동족의 싸움은 해서 아니 된다는 것이 오늘의 우리의 처지요 주장인 것이다.
그뿐인가, 우리는 4·19의 역사도 경험했다. 2백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경찰의 총부리 앞에 쓰러져야 했던 그때 독재의 이 박사가 물러나고 민주당 정부가 가장 민주적이라는 「내각책임제」의 헌법개정도 했었건만, 민주당 치하의 자유 아닌 질서의 문란과 부정부패가 마침내는 5·16의 군사정부를 맞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대단히 어려운 고비도 경험했다.
또 극히 최근에는 박 대통령의 밑에서 「유신」이란 규모의 통치가 진행되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그의 직속 부하였던 중앙정보부장 김모의 총탄으로 불의의 별세를 하고 그 뒤에 오늘의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저간에는 사회불안과 동요가, 착잡한 사태가 이따금 생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대충 이렇듯 우리의 기억에 살아있는 기억과 그 역사 속에서 우리가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생각할수록 우리는 그 동안에 저질러온 가지가지의 피와 눈물의 역사를 다시 반복치 말 것, 그리고 우리들은 국민의 시간과 정력을 최대한으로 살려 나갈 것 뿐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역사의 문제는 우리에게 벅찰 만큼 무겁다. 그 뿌리도 깊다. 필리핀의 문제가 우리신문·방송에서 쏟아져 나오는 동안에도 우리네 문제가 우리 눈앞에 크게 펼쳐지고 있었다. 하나는 국회의 문제요, 다른 하나는 대학의 문제임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야당인 신민당이 주장하는 「민주개혁 일정」과 헌법 개정문제에 따른 가두의 「국민서명」의 논란은 필리핀의 「코라손」 정부가 출발을 성명 하는 그 날, 지난 24일 대통령이 베푼 청와대의 오찬회에서 전 대통령과 여야의 3당 대표가 상당히 긴 대화를 나누면서 대통령과 여당인 민정당은 89년 개헌하도록, 앞으로 남은 2년의 임기를 기다려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하자고 했고, 그 날의 대화는 소상히 보도되었다. 그러나 야당 계열은 가두서명을 「강행」할 것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치는 국회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정당의 정치운동은 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또 국력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그 목적과 이상이 있을 것이고, 결코 정권 잡는 일이 첫 목표요, 주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민주적 발전이란 끊임없는 토론에서 한 걸음 또 한 발짝씩 전진을 도모할 밖에 없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역사적 여건이라 할 것이다. 가을의 추수는 낫으로 베어 단으로 묶어들이는 것이나 곡식이 여물기 전에는 함부로 낫질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모름지기 정객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국민 앞에 「지도」하려는 생각보다는 국민 앞에 겸손하고 언제나 국민의 어려운 사정을 묻고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정치문제는 국회 내에서 토론으로 처리하여야 할 것이다. 국회내의 어떤 폭력사고가 있었다 해서 행정부의 검찰에 호소하는 따위는 거리의 싸움패들도 아니하는 것일 것이다.
대학과 대학생의 문제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 때마다 새로이 발전시켜나 가야 할 새로운 문제라 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육성시켜 나가는데 있다 할 것이다.
오늘까지 이름을 남기고 있는 성균관은 학생이라는 선비들의 닦는 공부도 대단하였거니와 그들 선비의 자치기풍에 이르러서는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각자 독립자존과 학내의 자율규제의 전통 때문에 오늘의 동맹휴학이 자주 있었다. 어떤 문제가 갈 풀려나가지 않을 때는 상감의 분부로써 결론을 지을 정도였다는 만큼 성균관의 학생자치의 규범이 얼마나 엄했다는 것은 짐작이 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의 대학의 문제는 벌써부터 어려운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고 때때로 폭발적인 사태가 벌어져왔다. 거기에는 있을 수 있는 문제점도 있었다 하겠고 어떤 점은 대학의 발전에도 뜻이 없지 않았다 하겠으나 작년 봄 이래의 사태는 결코 단순치가 않았다. 그 가운데는 확실히 일본을 거쳐서 일본 말글로 된 것을 가지고 소위 「좌익」의 핵심적인 「전술적」인 말과 행동을 벌여왔다.
최근에 가슴을 놀랍게 찔러준 사건은 서울대학교 졸업식장의 4천 몇 백명의 학사·석사의 졸업증을 받아들고는 그 졸업증을 준 총장의 마지막 훈사가 있게 되자 그 졸업자들이 『우-우-』하고 소리를 지르고 또 노래를 부르며 식장이 텅 비도록 모두 빠져나갔다니 이 무슨 「변란」이냐 하는 놀라움을 가지게 된다.
그 동안 대학교 정책에 정부실책도 없지 않았다 하겠으나 스승이었던 총장 그 개인을 그처럼 외면하고 모욕을 주어도 그 학사, 그 석사들의 면목은 뻐젓할 수 있다는 것일까.
끝으로 우리 정부에 한마디 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 헌법과 언론기본법에 말하는 「언론자유」며, 「인간의 존엄과 자유」란 무엇을 뜻하며, 현실 면에서는 어떤 상황에서 자유 아닌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가 국민의 소리를 잘 들어서 행정에 반영시키고 사회의 불안을 찰 쓰다듬어야 한다면 국민의 진실한 소리를 듣는데서 언론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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