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시기,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할 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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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제유가 동향을 보면 1980년대 저유가 시기가 떠오른다. 당시 석유시장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거쳐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북해유전 같은 대체 유전이 개발돼 공급이 늘어난 반면, 세계 경제는 침체기로 접어들어 석유 소비는 늘지 않았다. 그러면서 배럴당 40달러를 넘었던 국제유가는 10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산유국들이 생산량 감축에 계속 합의했음에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90년) 전까지 약세를 거듭했다.

8년 전 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최근 40~50달러에서 횡보를 거듭한다. 원유 가격 40달러는 지난 30년간의 물가상승률과 세계경제 성장률을 감안할 때 구매력 기준으로 80년대 당시 10달러 수준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석유시장의 장기적 순환 추세의 초입에 다시 서 있는지 모른다. 다만 석유시장은 어느 때보다 금융상품과의 연계가 강화된 상태여서 뜻밖의 지정학적 불안요인이 가세할 경우 그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1980년대 저유가 시대의 교훈

에너지 가격이 하락했다 해서 소비를 다시 늘리고 에너지공급시설 확장으로 가는 방식엔 누구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에너지안보역량을 약화시키고 기후변화체제 대응마저 취약하게 하기 때문이다. 석유보다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더 많은 석탄 사용이 어렵게 될 것이지만 어쨌든 화석연료 사용을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게 엄연한 시대상황이다.

여기서 우리는 80년대 저유가 시기에 우리 정부가 에너지 문제를 시장에만 맡기지 않았던 경험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엔 경제성장·민생안정에 필요한 전력 공급, 도시가스 배관망, 지역난방 같은 에너지 공급설비 확충에 주력했다. 그렇다면 이젠 기후변화 대응을 비롯한 지속가능성에 우선순위를 두어 에너지 공급을 친환경적으로 전환하고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정보통신기술(ICT)과 전력저장장치 등 변화를 선도할 기술을 갖추고 있어 에너지의 합리적 소비를 위해 어느 나라보다 빨리 대응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그리드, 에너지프로슈머, 전기차 등 신사업이 탄생하고 이것들은 장차 우리 경제의 미래 먹거리로 성장할 것이다. 80년대에 원전과 천연가스 도입을 위해 일으켰던 발전중공업, LNG선박 건조, 액화설비 등 연관산업이 수출 주력산업으로 자리잡지 않았는가.

또 한 번의 저유가 시대를 맞이해 우리는 철강, 전자, 기계, 화학 등 주력산업의 생산공정에 신기술을 접목해 에너지 사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에너지산업 변화에 발맞춰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투자를 늘려나갈 때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경제의 간판 기업들이 ‘에너지 신산업 추진단’을 구성하고 전기차, 배터리 등 관련 투자를 늘리는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평가된다. 이것이 에너지 신산업이고 산업혁신 4.0이다.

에너지 수급시스템 환골탈태

우리는 뭔가 마음을 새롭게 다잡을 때 ‘대청소’를 하곤 한다. 대청소의 핵심은 일상에서 쓸모없어진 물건을 버리고 더 나아가 쓰레기 발생량을 근본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존의 생각과 틀과 행태를 바꿔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에너지수급시스템을 환골탈태시키기 위해 ‘에너지 대청소’를 본격화할 때다. 저유가로 확보된 여력을 바탕으로 신규 투자를 할 만한 여유도 생겼다. 공급시설 확충이 아니라 신산업 개발이 저유가 시기의 요체가 돼야 한다.

다행히 중앙정부와 공기업도 신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규제 개선과 투자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 예컨대 한국전력이 2조원 규모로 조성키로 한 ‘전력신산업펀드’도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지자체들은 친환경에너지타운, 제로에너지빌딩 같은 단위사업을 넘어 에너지밸리, 카본프리아일랜드 등 에너지 수급구조를 바꾸려는 종합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양측이 상생한다면 좋은 성과를 낼 타이밍이다.


문재도 서울대 객원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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