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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시기제시로 정국에 새 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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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4일 청와대 3당대표 회동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제시한「89년 개헌」은 l·l6 국정연설의 기본골격은 유지하고 있으나 그 내용은 1·16제의의 헌법논의 유보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사실상 여권의 새로운 정치구도를 제시한 것으로 주목할 만 하다.
1·16국정 연설은 △88년 평화적 정권교체실현 △89년 개헌「논의」를 기본구도로 삼고 그때까지 헌법논의를「유보」하자는 것이었다. 24일 청와대 제안도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대전제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89년을 개헌논의의 시작이 아닌「개헌의 시기」로 확정함으로써 여권의 적극적인 개헌의사를 표명했을 뿐 아니라 89년까지의 새로운 정치일정을 시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앞으로의 정국향방에 하나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제안이다.
물론 24일 청와대 회동에서 개헌의 내용이나 방향에 관한 확실한 언급은 없었다. 대통령중심제·내각책임제·이원집정부제 등 권력구조는 89년에 가서 국민 의사에 따라 결정돼야할 문제로 남겨두고 있다. 개헌안은 정부의 헌법특위, 국회의 헌법특위가 마련한 것을 가지고 국민의사를 묻는 것으로 되어있으며 여권소식통은 대통령 책임제·내각책임제·이원집정부제 등 권력 구조선택을 국민투표에 맡길 수 있다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최소한 현행헌법의 변경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단순히 정쟁중단을 위한 방편 적인 제의가 아니라 개헌의 시기와 용의를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89년 개헌」때 까지는 개헌논의의「유보」가 아니라 개헌을 준비하기 의한 본격적인 논의와 절충이 시작돼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를 위해 국회에는 헌법특별 위원회를 설치, 개헌문제를 논의토록 하고 아울러 정부차원에서도 별도로 대통령 직속으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정부의 헌법특위는 국회의 헌법특위와 별도로 개헌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정부특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설치·운영되며 국회헌법특위와 어떤 관계를 갖게되는지가 앞으로 커다란 관심거리의 하나가 될 것이다.
89년 개헌 제안과 관련해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이 같은 정치일정을 보장하기 위해 이를 민정당의 공약으로 삼겠다는 발언이다.
『민정당이 공당으로서 개헌을 약속하고 차기대통령 후보가 개헌을 공약한다』는 대목은 한편으로는 국민에 대해「89년 개헌」제안의 유효성을 보장한다는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민정당의 후계자문제, 88년 대통령 선거의 성격 및 그이후의 권력 전개과정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에서 그 시사하는 의미가 지극히 심장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민정당이 89년 개헌이라는 정치일정을 당의 공약으로 내세우고 다음 대통령 후보자가 이 공약의 준수를 선언한다면 88년 대통령 선거는 필연적으로 과도적 성격을 지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치구도를 바탕으로 한 여권내의 합의형성 과정이 관심의 표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89년 개헌」을 둘러싼 여권의 내부조정과 이를 둘러싼 저변정치는 여야관계 못지 않게 앞으로의 정국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 대통령의 89년 개헌제의에 대해 신민당은 일단 거부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신민당 측의 거부이유는 개헌시기를 89년으로 할 것이 아니라 현 대통령 임기 중에 하라는 것이며 개헌내용은 대통령 직선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의 내용에 관해서는 신민당 내에서도 아직 여러 갈래로 의견이 나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역시 개헌의 시기인 것 같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양측의 입장에는 아직 전혀 양보가 없다. 민정당 측은 88년 대통령선거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한번이라도 실현해본 후라야 개헌할 수 있다는 것이며 신민당 측은 88년까지의 임기는 보장할 수 있으나 88년의 대통령 선거는 현행의 간선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양측 입장을 보면 민정당 측은 호헌론에서 개헌용의로 변해왔고 신민당 측도 임기 중 퇴진에서 임기 중 개헌으로 약간입장을 조정했듯이 양측이 전혀 신축성이 없는 상태는 아니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문제가 국회헌법특위 등에서 개방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개헌시기에 관한 양측의 상반된 입장에서 보듯 청와대 회동으로 여야의 시각 차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개헌 서명에 대한 정부의 과잉제지가 자제되고 신민당 측도 가두서명을 강행할 뜻은 없는 것으로 말하고있어 경찰과 야당이 길거리에서 대치하는 노상정치의 모습은 일단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원 기소문제 등에서도 완화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민정당 측은 청와대 회동직후 신민당 측이 보인 불만스러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2·24청와대 회동을 계기로 여야관계를 정치적으로 풀어갈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며 신민당을 양 내로 유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고 보는 것 같다.
신민당이 청와대 회동의 결과를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문제이긴 하지만 신민당 측이 가두서명 외곬으로만 뛰쳐갈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 최소한 장내 진입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민정당 측은 이 같은 분석을 근거로 총무회담에서 시작해 중진회담과 대표회담 등을 열어 3월 중순께 국회를 열고 헌법특위를 설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작정이다.
만약 국회 헌법특위가 적절하게 구성·운영되고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면 장내정치가 의외의 큰 몫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목표가 실현되지 못한다면 정치의 장외 일탈이 재현 될 위험성도 없지 않다고 봐야한다. 아직 의원기소문제·개헌서명청원의 한계 등 여야간에 견해가 합치되지 않고 있는 문제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가 장외사태에 휩쓸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본질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협상이 여야간에 시작되어야 할 시점에 이른 것 같고, 이번 청와대 회동이 큰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민당은 이번 청와대 회담을 기점으로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개헌과 민주화 투쟁의 발전적 국면을 맞았다고 보고 있다. 표면적으로 아무런 응답이 없던 상대를 향해 고단한 싸움을 벌여온 신민당은 이제 불완전한 상태로나마「큰 정치」에 대한 보다 구체적 설명을 들었고 활발한 헌법논의를「보장」받는 등 일단 대화의 테이블로 상대를 끌어들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회동직후 열린 이민우 신민당총재, 김대중·김영삼씨의 3자 회동은「89년 개헌」을 일단 고려하지 않기로 하고 88년 임기 내 민주화일정 제시까지 서명운동을 계속 추진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국회의원·보좌관 기소문제, 당사·민추협봉쇄, 서명운동의 저지, 양 김씨 연금문제 등이 해결될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됐지만 이는 양측이 대화를 시작하는데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기본적 요건일 뿐이지 신민당이 내걸고 싸워온「본질문제」에 대한 진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민당이 이번 청와대 회동과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있는 측면은 이번 회동이 열린 배경에 있다. 서명운동과 공권력의 충돌이 빚은 국내외의 여론이 정부·여당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들의 카드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는 해석에서다.
신민당도 앞으로의 정국전개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화의 국면임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대화에만 전적으로 매달리기 힘든 나름의 내외 여건을 갖고 있다.
현재 신민당에는 대화로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있는 세력도 있고, 그렇게 됐을 때 자신들에게 손해가 된다고 보는 집단도 있으며, 긴장에 대해서는 무조건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한 차원 진전된 상황에서 신민당이 이제까지 구사해왔던 긴장 드라이브를 계속 고집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왜냐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극단적으로 싸움을 몰고 가면 당내 분파의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민당이 원내의 대화에만 전적으로 매달릴 형편도 아니다. 구조적으로 열세에 놓인 국회에서의「실세」만 갖고는 얻어 낼 수 있는「물건」의 질에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그 타협의 산물이 재야와 운동권 중 상당수를 동조세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큼「매력」있는 것이 되지 않고는 3월 중순부터 야기될 상황에서 여야도 아닌 제 3의 세력으로 개헌정국의 주도권이 넘어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는 것 같다.
결국 신민당은 파국이 올 것을 두려워하는 당 내외「소시민」의 우려를 씻어주는 한편 만만치 않은 제 3세력의 대부분을 흡수 할 수 있는 내용을 얻어내기 위해 대화와 함께 당을 보호하고 전 재야를 주도하는「안정적 긴장상태」를 끊임없이 유지해야하는 입장에 몰려있다.
따라서 신민당은 개헌추진 본부의 시·도지부 현판식과 개편대회를 통해 개헌정국의 무드를 잃지 않으면서 헌법특위를 통한 국회 내에서의 여야대화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국을 소용돌이에 몰아넣지 않으면서도 신민당이 얻어낼 것은 모조리 얻는 양 내외 투쟁의 황금분할이 과연 가능할지, 또 다른 파문을 몰아오게나 되지 않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김영배·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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