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 하락분 80%만 반영된 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번 유가조정의 특징은 ▲국제원유가 하락분의 대폭적인 반영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벙커C유의 대폭 인하 ▲여론을 반영한 조기인하등 세 가지로 집약된다. 『국내도착 원유가격을 기준으로 국내유가를 조정하겠다』는 것이 당초 정부방침이었으나 이같은 방침이 바뀐 것이다.
동력자원부가 이번 조정 때 기준으로 삼은 원유가격은 배럴당 22달러89센트인데 이 가격은 지난 13일 현재 국내 5개 정유회사가 체결한 계약분의 추정가격이다. 실제 원유도입가격은 선적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약당시 가격은 추정일 뿐이다.
따라서 위험부담이 상당한데도 국내유가를 조정한 것은 정부가 원유가 하락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명분과 여론에 밀린데다 원유가가 앞으로 더 떨어진다는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로 자신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번에 기준으로 삼은 원유가격은 지난해 4월 석유관세 및 기금조정 때 기준으로 삼은 배럴당 27달러57센트보다 4달러68센트(13.25%)가 내린 가격이다.
이밖에 국제금리하락·운임 등 부대비용하락 및 정유사의 판매수익증가 등으로 생긴 국내유가인하 요인은 모두 19.6%다. 그러나 환율상승·관세인상·정제비증가·유통수수료인상(5%)등 인상요인도 6.67%나 생겨났으므로 이를 뺀 국내유가 평균 인하 폭은 12.93%(공장도 가격)로 결정됐다. 배럴당 3만1백32원이 2만6천2백36원으로 내리게 된 것이다.
종합적인 인하요인을 기준으로 하면 66.0%, 원유가 하락분만 기준으로 할 때는 80%를 각각 국내유가에 반영한 셈이다.
83년4월 원유가가 배럴당 5달러 내렸을 때 30%만 국내유가에 반영하고 나머지 70%는 관세신설(5%), 석유사업기금인상 등으로 흡수했던 때에 비하면 이번 인하 폭은 상당히 크다.
그동안 오를 때는 크게 오르고 내릴 때는 소폭에 그쳐 국민들로부터 받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데다 일본 엔화 강세·국제금리인하·미국달러화 약세 등을 감안, 나라경제 전체의 활성화와 성장촉진을 위해 대폭인하를 단행했다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다.
이번 유가인하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곳은 한전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체다. 에너지절약이라는 차원에서 일반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직접적인 혜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주요 기름별 가격조정을 보면 산업체에서 주로 쓰는 벙커C유 가격의 인하 폭이 l5.3%(소비자가격)로 가장 높다.
벙커C유 가격이 일본·프랑스보다는 싸지만 대만보다는 16.5%, 미국보다는 50.2%나 비싸기 때문에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
더 큰 폭으로 내릴 수도 있으나 19%정도 내리면 유연탄과 같은 값이 돼 에너지대체가 중단되고 유류소비가 증가하게 되므로 15.3%인하에 그쳤다는 것이다.
등유는 서민용 연료라는 점에서, 경유는 버스·철도 등 대량수송수단에 쓰인다는 점에서 각각 10.3%, 10.6%씩 내렸다.
휘발유의 경우 정부는 당초 자가용승용차에만 쓰인다는 점을 들어 그대로 둘 것도 검토했으나 특별소비세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비난과 자가용 소지자가 오피니언 리더라는 점을 감안, 결국 6.1%를 인하했다.
LPG(액화석유가스)가격도 중산층이상에서 쓰는 소비재라는 이유로 4.7%인하에 그쳤다. 그러나 LPG는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LPG수입 때 t당 50달러씩 기금을 부과하는 데다 특별소비세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력요금의 경우 평균2.8%가 인하됐는데 벙커C유 가격인하로 발생되는 한전의 이익 1천27억원을 모두 전력요금인하에 반영시켰다.
조정방향은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 및 광업의 97%를 차지하는 용량 5백㎾미만의 산업용 소동력 부문에 치중, 10.8%를 내리기로 했다.
소동력의 경우 기본요금을 15%, 전력사용요금은 8%씩 내렸다. 반면 계약용량 5백㎾ 이상 대동력 산업체는 0.6%인하에 그쳤다.
현행 요금구조가 소동력이 ㎾당 78원21전으로 대동력 (52원26전) 보다 높기 때문에 소동력 요금을 대폭 내린 것이다.
인하금액 1천27억원 중 57.3%인 5백88억원이 산업용 전력요금인하에 쓰여졌다.
이밖에 남는 돈으로 주택·업무·농사·가로등용으로 공평하게 나눠 평균 2∼3%씩 내렸다.
한편 우리의 경쟁국인 대만도 19일부터 경유·벙커C유·휘발유를 평균 5.2% 인하했다.
조정된 가격을 기준으로 우리의 가격수준과 비교하면 휘발유는 11.2%, 벙커C유는 2.1%, LPG가격은 63.3%나 우리가 비싸고 등·경유는 19∼23% 정도 우리가 싼 편이다.
한편 일본은 국제원유가 하락에 따라 지난1월1일부터 휘발유 3.2%, 등유 5.9%, 벙커C유 11.7%를 각각 인하했는데 휘발유를 제외하면 우리보다 값이 높은 편이다.
정부는 관세를 5%로 인상, 원유가 하락분을 에너지절약시설에는 투자하지 않고 소비자금으로만 유보시켜 너무 흥청거리고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석유 값이 내린다고 우리만 내리는 것도 아닌데 이번 가격조정으로 에너지 절약정신이 해이해져 석유소비가 늘어난다면 모처럼 맞은 호기회의 의미가 반감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석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