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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이 맥아더의 마지막 승리 이후 고전한 건 중공군 역량 무시한 탓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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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호 8 면

백선엽 1950년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영웅이다. 1920년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태어났다. 첫 육군대장으로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전쟁은 혹독한 승부를 가리는 길목이다. 그곳에서 지면 크게는 목숨을 잃는다.?자신이 지닌 것의 대부분도 상대방인 적에게 빼앗긴다. 전쟁에 나선 사람이 승부를 책임지는 장수의 자리에 있다면 그 결과는 더욱 엄중하다. 저 한 사람의 목숨과 지닌 것을 빼앗기는 차원이 아니다. 거느렸던 수많은 사람의 생명, 나아가 군인으로 지켜야 했던 모든 것, 자신이 속한 나라의 영토와 재산을 모두 잃는다. 그러니 전쟁터에서의 승부는 죽고 사는 일, 남느냐 사라지느냐를 가리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갈림길이다. 그런 승부를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자 전 육군참모총장은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인물이다. 그는 1950년 벌어진 동족상잔의 처절한 비극 6·25전쟁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참전용사가 살아 있지만 당시의 전쟁을 증언하는 위상으로 볼 때 그의 존재감은 아주 뚜렷하다. 그는 6·25전쟁에서 가장 공헌이 높았던 대표적인 한국군 장성이다. 부산과 대구~대전~서울~평양~신의주를 잇는 경부의 축선에서 주로 싸움을 벌였고, 가장 찬란한 전적을 쌓은 전쟁영웅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참전한 미군과 큰 접점을 이룬 인물이다.


따라서 그로부터 듣는 당시의 전쟁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교훈이다. 이 같은 취지에서 그는 회고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지금까지 나온 그의 회고록은 6권에 이른다. 회고를 통해 그는 전쟁을 기억하려는 많은 이에게 당시 상황과 경험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어딘가 부족했다. 전쟁을 연대기 또는 전투별로 설명하는 그의 회고로는 다 챙길 수 없는 내용이 있어서다. 당시 전쟁에 관한 총평(總評) 그 정도는 아니라도 우리가 당시 전쟁에서 어떤 특징을 보였으며, 잘한 것과 잘못된 일은 어떻게 봐야 옳으며, 적이었던 김일성 군대와 중공군의 실제 모습은 어땠는지 등 모두 궁금한 대목이다.


아울러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가려진 이후의 패착이 어떤 경위에서 나왔는지도 궁금하다.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전법, 조우전(遭遇戰) 뒤에 벌어진 미군과 중공군의 실제 전투기술과 전투력 차이, 전쟁을 촉발한 김일성의 능력과 한계 등도 궁금한 대목이다.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아무나 내놓을 수 없다. 그러나 백 장군은 그에 적합한 인물이다. 6·25전쟁의 가장 중요한 전투에서 핵심적인 야전 지휘관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 지금의 수요를 감안했음인지 백 장군은 최근 전쟁철학을 다룬 책을 냈다.

백선엽 지음 / 유광종 정리 책밭, 377쪽

6·25전쟁 정전 협정 63주년인 27일 용산 삼각지 전쟁기념관에 있는 백 장군 사무실을 찾았다. 그가 새로 펴낸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에 관한 감상을 듣기 위해서다. 우리의 싸움 방식은 어땠느냐는 물음부터 던졌다.


“사실 건국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1950년 당시 우리의 군대 역량은 내세울 게 없었다. 그럼에도 김일성이 도발한 전쟁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전 장병 모두 열심히 싸웠다”고 그는 서두를 꺼냈다. 그는 이어 “용맹함에 있어서는 결코 우리 모두 다른 군대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나아가는 용기에도 불구하고 항상 쉽게 물러서는 단점도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럼 그 점이 우리가 드러냈던 싸움 기질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백 장군은 “기질이라기보다 훈련이 부족한 군대의 전형적인 문제점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기록적인 패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초전에서 김일성 군대에 3일 만에 서울을 내주고 패퇴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불가항력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대오를 제대로 추슬렀던 낙동강 전선 전투 이후, 특히 중공군이 참전한 뒤의 싸움에서 우리는 쉽게 나아갔다가 쉽게 등을 보이며 붕괴 위기에 처한 적이 많았다”고 했다.


백 장군은 그러나 “이 점은 김일성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쉽게 나섰다가 쉽게 물러서는 경향을 보였다. 역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훈련을 쌓은 군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북한군을 이끌었던 김일성 본인이 전쟁 자체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 모든 것이 걸린 싸움의 복잡성, 늘 등장하는 전쟁터의 변수에 다 둔감했다”고 말했다.


총 3권으로 펴낼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의 1권, 이제 갓 나온 책은 전쟁터의 리더십이 큰 주제다. 맥아더 장군의 성공과 좌절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그 흐름에 섞여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는 한국군의 전투 속내가 그려진다. 아울러 ‘때론 몽둥이만을 든 채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밀어닥친’ 중공군의 실제 모습이 나온다.


백 장군은 “맥아더 장군은 공산군 침략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스케일로 따질 때 아주 위대한 군인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했다. 그러나 백 장군은 “그럼에도 그는 이미 70세를 넘긴 고령이었고, 45년 8월 일본 항복 뒤 도쿄 상공에 나타났을 때 이미 신(神)과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그 높고 우람한 위상(位相)에서는 자만심이 스며들기 마련이고, 맥아더는 그런 과정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게 백 장군의 설명이다.


백 장군은 그 점을 인천상륙작전 뒤 드러났던 맥아더 장군의 패착과 연결한다. “흔히 적을 우습게 보는 사고는 지휘관에게는 가장 치명적이다. 6·25전쟁 초반의 인천상륙작전이 맥아더의 마지막 승리였다. 그러나 상륙작전 성공 뒤 그는 중공군 참전 가능성을 거의 무시했고, 이미 한반도 북부에 스며든 중공군의 역량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 비해 중공군의 전법은 매우 노련했다고 백 장군은 설명한다. “국민당과의 오랜 내전, 항일전쟁에서 닦은 전쟁기술 등으로 그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함께 복잡성을 충분히 이해했던 군대로 세계 최강이었던 미군을 한동안 심각한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했다.


전사(戰史)를 들여다보면 우리 한국군은 그런 중공군이 집요하게 노렸던 공격 대상이었다. 가장 취약한 전투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중공군의 초반·중반 공세에 한국군의 2군단·3군단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병력 절반 가까이 상실하면서 군단급 부대가 일격에 무너진 사례는 현대전에서 매우 드문 편이다.


백 장군은 “특히 초반에 노련한 중공군의 공세가 먹혀 유엔군이 고전했던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공군 또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현대전을 수행하는 군대로서 보급과 화력, 체계적인 전투 수행 능력에서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일성의 전쟁 이해 수준을 보는 백 장군의 시야가 날카롭다. 그는 “김일성 본인이 전쟁을 잘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아무래도 연해주 등 지역에서 아주 작은 소규모의 게릴라 병력을 지휘했던 게 전부인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책에서는 김일성의 전쟁 지휘 방식, 전쟁을 이끄는 지휘 수준이 자세하게 그려진다. 그는 상대의 전투 역량을 없애는 대신 대한민국의 영토 점령에 우선적으로 주력하는 단견을 드러낸다. 이 점은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와 크게 엇갈리는 대목이다. 펑은 전투를 잘 이해하지 못한 김일성을 여러 차례에 걸쳐 통박하면서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는 것이다.


책의 미덕은 이 점에 있다. 북한군과 중공군을 상대로 직접 야전을 지휘했던 백 장군의 경험에다 중국에서 나온 전쟁 당시의 은밀한 자료가 섞여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백 장군을 10여 년 보좌한 이왕우 예비역 대령, 7년 동안 백 장군을 인터뷰하고 있는 유광종 전 중앙일보 기자가 새로 드러난 자료를 백 장군에게 질문하고 그의 관점과 해석을 곁들여 이 책을 펴냈다.


책의 커다란 흐름은 전쟁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느냐를 묻는 형식이다. ‘전쟁터 리더십’은 반드시 따르는 요소다. 아울러 전쟁 당시 드러난 여러 지휘관의 결정과 패착도 함께 다룬다. 실전(實戰)에서 리더십의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다.


책에서는 우리가 드러낸 싸움 방식의 명암을 함께 다루면서 솔직한 자아 반성을 시도한다. 책 제목은 그래서 임진왜란 때의 재상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을 따왔다. 또 묻는 게 있다. 우리는 6·25전쟁의 교훈을 제대로 살렸느냐는 점이다.


백 장군은 이렇게 말한다. “오랜 세월을 준비하고 또 준비하다가 전쟁터에 나가 하루 만에 제 힘을 바치고 죽는 존재가 바로 군대다. 그런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결여된 군대는 전쟁터에서 반드시 진다. 옆에 선 전우와 신뢰가 없고, 적에게 포위됐을 때 ‘내 동료는 나를 반드시 구하러 온다’는 믿음이 없는 군대 또한 반드시 적에게 진다. 6·25전쟁의 많은 장면에서 우리는 이런 경험을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쌓았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의 강조점은 여기에 있다. 그런 높은 수준의 정신력과 훈련을 쌓은 군대를 우리는 지금 만들었느냐 하는 점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이 책의 무게감을 더해 준다. 나라 안보의 간성인 국방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서다. 삶의 모든 과정이 다툼이자 싸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은 현대의 우리 모두에게 다 유용하다. 기업을 이끄는 리더, 온갖 경쟁의 틈바구니를 헤쳐 가야 하는 우리 사회 모든 이가 고루 되새길 만한 내용이 들어 있다.


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kim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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