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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적소에 속도전으로 과감히 집행해야 성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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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호 18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 후 세 번째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을 26일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가 편성한 추경 예산은 11조원으로 역대 여섯 번째 규모다.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독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구조조정을 재정 측면에서 뒷받침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실업과 지역경제 위축에 대처하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국회 각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즉시 예산안 심사에 착수했다.


정부는 추경안을 포함한 28조원 규모의 재정보강을 통해 경제성장률이 올해와 내년 각각 0.1~0.2%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29일 발간한 ‘2016년 추가경정예산 분석’ 보고서에서 이번 추경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0.12~0.13%포인트, 내년에는 0.18~0.19%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정부의 재정 확장을 근거로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 상향했다.


추경이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추경은 기본적으로 자본(재정) 투입이다. 재정지출이 늘면 산출은 증가하게 마련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추경이 편성된 이듬해 경제 성장률은 대체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 어떻게 예산을 쓰느냐에 따라 추경 효과는 달라진다. 경기 부양은커녕 재정건전성만 훼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박정희 정부땐 매년 1~4차례 예산 추가추경은 역대 정부가 즐겨 쓴 카드였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대한민국 재정 2016』에 따르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추경은 95차례 편성됐다(그래프 참조). 지난 68년 동안 추경이 편성되지 않은 해는 13년에 불과하다. 정부별로 보면 박정희 정부가 28회, 이승만 정부가 23회, 김대중 정부가 8회 편성했다. 박정희 정부 때는 경제성장률이 역대 최고치(14.9%)를 기록했던 73년을 제외하곤 매년 1~4차례 예산이 추가 투입됐다. 한국 경제가 3저(금리·유가·원화가치 하락) 호황을 누리던 80년대에도 두 해(83·86년)를 제외하고 어김없이 추경이 동원됐다. 98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9년 연속 추경 예산이 집행됐다.


추경 예산은 본예산이 편성된 후 예상하지 못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예외적’으로 예산을 추가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역대 정부가 추경 카드를 연례행사처럼 쓸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이에 대한 법적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7년 국가재정법이 제정되면서 제동이 걸리는 듯했다. 노무현 정부는 과다한 추경 편성으로 재정건전성이 훼손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추경 편성 요건을 법으로 제한했다.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 경기침체·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했다. 그 해 추경은 없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추경 편성은 불가피했다. 특히 2009년에는 사상 최대 규모(28조4000억원)의 추경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외환위기 이후 올해까지 18차례에 걸쳐 130조원 넘는 추경이 편성됐다.


98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추경은 경기 불쏘시개 역할을 톡톡히 했다. 98년 김대중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25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보다 1조원 가까이 증액하며 힘을 보탰다. 그 결과 1998년 -5.5%이던 경제성장률은 이듬해 11.3%로 껑충 뛰었다. 2003년에는 카드사태에 따른 내수 침체와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해 두 차례 추경이 편성됐다. 역대 세 번째로 많은 7조5000억원이었다. 늘어난 예산은 대부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서민·중산층·중소기업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쓰였다. 이듬해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2%포인트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진 2009년에는 이른바 ‘수퍼 추경’이 편성됐다. 이명박 정부가 그해 3월 말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은 한 달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2008년 국채 발행 없이 4조8000억원의 추경 예산을 썼던 정부는 2009년 21조5000억원이나 되는 국채를 발행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결국 2%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던 2009년 경제성장률은 0.7%를 기록하며 선방했다. 2000·2008년 국회에 발목 잡혀 효과 반감 실패한 추경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추경은 경기가 저점이거나 하락 추세일 때 편성해 단기간에 쏟아붓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과거 추경 제출·편성 시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최성은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1999년을 제외하면 경기부양을 위한 추경 편성은 비교적 경기 저점에서 적절하게 편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추경 편성안이 정치권 공방으로 국회에 묶여 ‘때’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 2000년과 2008년이 그런 해다. 2000년 6월 29일 김대중 정부는 저소득층 생계안정 지원과 의약분업·구제역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2조4000억원 규모의 미니 추경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추경은 107일이 지나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2008년 유가 급등에 따라 편성된 4조6000억원 규모의 추경 역시 국회를 통과하는 데 90일이 걸렸다. 두 추경은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타이밍을 놓치면서 정책 효과가 반감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물론 국회 심사기간이 짧다고 능사는 아니다. 국회를 빨리 통과해도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허사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18일 역대 세 번째 규모(17조3000억원)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세입 결손분을 채우고 내수 회복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제출안은 19일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효과는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3년 추경이 그 해 경제성장률을 0.367~0.384%포인트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저조한 집행 실적이었다. 당시 추경안은 5월 초 국회를 통과했지만 연말까지 쓰지 못한 예산이 3조9000억원(22.5%)에 달했다. 이 돈이 제대로 집행됐다면 경기가 더 좋아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2009년 이후 재원 마련용 국채 45조추경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던 이유가 또 있다. 추가된 예산이 일자리를 만들고 경기를 부양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펑크난 세수를 메우는 데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1998~2013년 편성된 추경 예산 111조4000억원 중 세입결손을 보전하는데 39조8000억원(35.7%)이 들어갔다. 정부가 반복적으로 경기를 낙관적으로 예측하고 과잉 예산을 짠 후, 예상한 만큼 세수가 들어오지 않자 추경 예산으로 메웠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추경이 잦다는 것은 정부가 경기 예측에 실패하고 국회는 본예산 심사에 무능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추경의 성패를 가르는 잣대는 간단하다. 경기 부양 효과가 있는 분야에 빠르고 과감하게 집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리 인하와 감세 등 정책 조합(policy mix)이 이뤄지면 효과는 배가된다.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추경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잦은 추경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만만치 않다. 지난 10년간 국회는 추경안을 심사하는 데 연평균 33일을 썼다. 나라 빚도 급증했다. 강건희 국회예산정책처 정책분석관은 “2008년까지는 주로 세계잉여금을 통해 추경 재원을 조성했지만 2009년 이후에 세수 여건이 악화하면서 주로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9~2015년 추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된 국채는 45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경기 예측 능력을 높이고 국회가 본예산을 더욱 엄정하게 심사해 추경을 최소화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추경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추경이 재정 땜질로 성장률을 조금 올리는 용도로 쓰여서는 곤란하다.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추경은 일회성 지출이 많아 재정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본예산을 면밀히 짜고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추경이 잦은 것은 본예산을 뜯어고치는 것이 너무 쉽기 때문”이라며 “예산안 형식이 아니라 선진국처럼 예산을 법률안 형태로 처리하는 예산 법률주의를 도입하면 추경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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