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하락은 세계경제에 낭보|조순<서울대교수·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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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작년 말부터 연일 떨어지고 있는 석유가격은 드디어 배럴당 15달러 선으로 폭락하였다. 72년에 배럴당 2달러이던 것이 82년에 42달러로 앙등한 것과 비교해 보면, 새삼 금석지감을 금할 수 없다.
석유가격의 움직임은 다른 모든 가격과 같이 수요·공급의 변화를 반영한다. 70년대에 2달러로부터 42달러로 폭등한 이유는 당시 세계 석유 공급량의 3분의2를 장악하고 있던 산유국(OPEC)이 카르텔을 형성하여 석유생산량을 통제하였기 때문이었다.
73년의 1차 석유파동, 79년의 2차 석유파동을 겪는 과정에서 석유의 수요와 공급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그것이 오늘에 보는 바와 같은 가격 반락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난 것이다.
우선 수요에 관해서 보면, 많은 선진국에 있어서는 기업과 가정에서「생 에너지」운동이 주효하여 GNP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석유사용량은 오히려 주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다음 공급에 관하여 보면, 석유가격의 앙등은 세계도처에 신유전의 개발을 가져 왔다. OPEC이외의 산유국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영국·노르웨이·이집트·소련 등이 이제 모두 석유수출국이 되었고, OPEC의 산유량이 세계 석유 총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2선에서 3분의1선으로 떨어졌다. OPEC 산유량 비중의 하락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 왔다.
첫째, OPEC의 결속은 되기가 어렵게 되고, 설사 결속이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석유가격을 통제할 수 없게되었다. 둘째, OPEC는 그들의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고 비OPEC산유국의 생산량을 줄이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석유생산량을 더욱 늘려서 가격을 더욱 하락시키는 가격전략을 채택하게 만든 것이다.
OPEC의 이 가격전략이 성공할는지는 두고 보아야할 일이지만 만일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시장점유율은 앞으로 더욱 감소할 것이고, 석유가격은 지금까지의 과점가격으로부터 끝내는 경정가격으로 될 것이다.
석유가격이 현재의 낮은 선에서 고정된다면 세계경제는 큰 이득을 보게될 것이다. 첫째 OPEC를 제외한 모든 나라(영국·노르웨이 등의 공업국을 포함하여)의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모든 산업의 생산비가 그 만큼 감소할 것이 때문이다.
둘째, 거의 모든 나라의 물가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석유가격이 배럴 당 10달러 하락하면 선진공업국의 성장률은 0.5∼1%포인트 정도 상승되고 물가는 1∼1. 5%포인트 하락될 것이라 한다.
세째,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 의존적인 채무국의 국제수지의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선진국의 성장이 촉진됨에 따라 수출이 증가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입액이 크게 감소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유가가 만일 15달러 선에서 안정된다면 총 수입액은 거의 30억 달러 정도 감소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가의 하락은 국제적으로 이자율을 하락시킬 것이므로, 이것이 외채의 이자율 상환액을 크게 감소시킬 것이다. 그 반면 우리나라 해외건설업의 수주와 외화수입은 더욱 줄어서 이것이 무역외수지의 호전을 어느 정도 상쇄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바람직한 효과가 있는 반면, 유가의 하락은 산유개도국에 대하여는 거의 결정적인 타격을 줄 것이다. 물론 이 나라들도 위에서 말한 바람직한 효과의 작용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가의 폭락으로 말미암은 국제수지상의 타격을 상쇄하기에는 너무나 미약할 것이다. 특히 외채를 많이 지고있는 산유국, 이를테면 멕시코·베네쉘라·인도네시아 등의 외채 상환 능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멕시코를 비롯한 산유 채무국의 외채상환이 어렵게 되면 이것은 국제금융제도를 압박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채무디플레이션을 일으킬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유가하락의 타격은 멕시코나 베네쉘라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지 국제적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은 없다.
멕시코 같은 나라는 앞으로 석유가격이 20달러 이하로 머물러있게 되면, 현재 1천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를 상환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외채를 갚지 않을 방법이 있을 것인가. 그런 방법도 없다.
채권은행의 국제신디케이트는 도저히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멕시코는 앞으로 반영구적으로 외채의 굴레에서 신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석유가격의 하락은 세계경제를 위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너무 급격한 움직임은 좋지 않다. 많은 불확실성을 만들어 내는 까닭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폭락」의 이면에는 다소의 불안감이 없지 않다. 「폭」자는 언제 어디에 있어서나 살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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