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에 넘치는 집, 머리에 이고 힘겨워하고 있다면…

조인스랜드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기자]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3> 월든 오두막과 세한도의 집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마주하거나 지평선이 드러나는 너른 들판에 나서게 되면 문득 들려오는 듯한 선율이 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영원한 자유인 데니스(로버트 레드퍼드)를 표현하는 음악으로 쓰였던 모차르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2악장 아다지오다.

이 영화에서 사바나 대초원을 누비는 모험가 데니스에게 커피농장 여주인 카렌(메릴 스트리프)은 묻는다. “집엔 언제 오실 거예요?”

카렌은 파혼의 상처를 입고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상속받은 땅이 있는 케냐로 왔다. 빈털터리 귀족 블릭센 남작 브로(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와의 계산된 결혼을 위해서다. 니공 언덕 산기슭에 지어진 유럽식 집에서 신혼집을 꾸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농장과 연인, 모든 것을 잃은 카렌이 그 집을 떠나 덴마크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강인한 생활인인 카렌에게 집은 삶의 견고한 축이다. 그런 카렌에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데니스는 묻는다. “진실로 무엇인가 소유한다는 것이 가능하냐”고.

1 현재 월든 호숫가에 재현돼 있는 소로 오두막과 소로의 청동상 ⓒRhythmic Quietude

우리에게 집은 무엇일까. 현실이고 생존의 조건으로서의 소유와, 근원이고 꿈과 가치로서의 삶 사이에 내가 쓰려는 집 이야기가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지으며 집에 대한 본질적 접근을 한 인물이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인생의 본질적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버드대 출신의 이 도도한 엘리트 의식의 소유자는 당시 보스턴의 1년치 집세 정도인 28달러 12센트(표 참조)만 가지고 도끼 하나 들고 홀로 숲에 들어가 소나무를 켜서 3개월 만에 집을 완성해 입주하게 된다. 그러고는 당시 800달러가량 지불해야만 하는 일반적 집들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결국 노동자가 10~15년 걸려 모아 지은 집은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더 가난하게 됐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됐는지 모른다.”

기사 이미지

생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더욱 간소한 삶을 주장했던 초월주의 철학자는 그 당시 건축가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린다.

“‘건축가들은 건축적 장식에는 진리의 핵심과 필연성, 그에 따른 아름다움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마치 신의 계시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허구이고, 좋은 집이란 ‘거주자의 필요와 성격에 의해 겉모습과는 무관하게 어떤 무의식적인 진실성과 기품에 따라 내부에서 외부로 자라나 표현되는 것’이다.”


그의 치열했던 삶의 태도는 실용주의(pragmatism)나 개척정신(frontier)으로 이어지면서 유럽의 대항해 시대에 비견되는 대모험 시대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서양 문명이 절정기를 향해 치닫던 19세기 중반, 차세대 강국 미국의 중심부에서 일과 명예, 돈과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한 혁명가의 월든 호숫가 오두막 체험기는 150여 년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너희들은 잘 살고 있니?”라고.

최근 국내에서 국가가 지정하는 ‘최소 주거기준’이 7년 만에 12㎡(3.6평)에서 14㎡(4.2평)로 상향 조정되면서 월든의 오두막집 크기가 새삼 회자된 적이 있다. 소로가 제시한 기준에 비로소 우리가 올라선 것일까?

소로가 미국 매사추세츠 월든 호숫가에서 집을 짓기 1년 전 제주도에서 귀양 중이던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자신을 잘 챙겨주는 후배 이상적에게 감복해 집을 한 채 지었다. ‘세한도’에 그려진 집이다. 우리나라 집 그림 중에 가장 사랑받는 이 집은 조선시대 일반적인 3칸짜리 초옥의 구조도 갖추지 않은, 마치 축사 같은 느낌의 최소한의 형식으로 그려져 있다. 집을 그린다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기둥과 지붕 구조 및 개구부의 표현이 없으며, 오직 중국에 흔한 원형 출입구 하나만 있을 뿐이다.

2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1844) 23×69.2㎝ 3 소로가 살았던 월든 숲 속의 오두막 4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6)의 한 장면

혹자는 김정희가 교유하던 청나라 학자 옹방강의 시나 그림을 통해 얻은 소동파의 겨울 소나무 그림인 ‘언송도’와 연관지어 이 중국식 집 형태에 대한 유래를 뒷받침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추사의 세한도는 ‘시린 한겨울을 그린 그림’으로서 최고의 걸작이 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림으로 남았다.

동시대에 조선에서 그림으로 지은 집과 미국에서 온몸으로 지은 집! 둘 다 역사적으로는 최고의 값어치를 지닌 집으로 남아 있다. 그것도 그 당시 현실적으로 유배된 엘리트들의 유산으로서 말이다. 가장 작은 집,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집, 그래서 거대한 우주(집 宇, 집 宙)와 맞닿아 있는 집은 과연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 것일까.

글 최명철

-------------------------------------------------------------------------------------------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

※이글은 중앙선데이 제제272호에 게재됐던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중앙선데이 바로 가기 sunday.joins.com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