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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공산주의 체제 날선 ‘썰전’ … 승자는 개방적인 미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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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호 22면

1959년 7월 24일 흐루쇼프(왼쪽의 모자 쓴 사람)와 닉슨(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서로 삿대질을 해가며 자신의 체제를 선전하고 있다. [사진 미의회도서관]

닉슨(이하 'N')=이제 부엌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일반 가정에 있는 것과 같은 겁니다.


흐루쇼프(이하 'K')=이런 것은 우리도 갖고 있습니다.


N=(중략) 미국에서는 여성들을 편하게 해줍니다.


K=공산주의에선 자본주의의 여성문제가 없습니다.


N=여성문제는 어디나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가정주부들이 편했으면 하는 겁니다. (중략) 파업 중인 우리 철강 노동자들도 이런 집을 살 수 있습니다. (중략)


K=우리 철강 노동자와 농민도 이런 집에 살 수 있습니다. 당신 미국의 집들은 건축업자가 새 집을 팔기 위해 20년만 가도록 짓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손자를 위해 튼튼하게 짓습니다.


N=미국 집들은 수명이 20년 이상 갑니다만 그렇더라도 미국인 다수는 20년이 지나면 새 집과 새 부엌을 원합니다. (중략) 새로운 발명과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미국 체제입니다. (중략)


K=이런 집을 얻으려면 소련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됩니다. 미국에서는 돈이 없으면 노숙해야 하지만요. (중략)


N=(중략) 다양성과 선택권이 가장 중요한 겁니다. 우리는 최고 관료 혼자서 결정하지 않습니다. 이게 차이입니다.


K=정치문제로는 당신과 의견 일치를 볼 수 없을 겁니다. 미코얀 부주석은 후추 맛 수프를 매우 좋아합니다. 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지낼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N=(중략) 사람들이 원하는 걸 스스로 선택하게 합시다. (중략)


위 대화는 지금으로부터 꼭 57년 전인, 1959년 7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소련 총리 니키타 흐루쇼프와 미국 부통령 리처드 닉슨이 나눈 대화 내용이다. 58년 말 미국과 소련은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상대국에서 박람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그리하여 이듬해 6월 뉴욕에서 소련 박람회를 가졌고, 7월에는 모스크바에서 미국 박람회를 열었다. 모스크바 박람회의 개막 전야제 때 닉슨은 흐루쇼프를 안내했다. 모스크바 박람회 직전에 미국 의회는 매년 7월 셋째 주를 ‘포로국가의 주’(Captive Nations Week)로 결의했다. 당시 명단에 포함된 포로국가 대부분은 소련 위성국가였다. 박람회를 참관한 흐루쇼프는 미국 정부의 조처를 비난했다. 그러다가 전시된 부엌시설 앞에서 닉슨과 흐루쇼프 간에 언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부엌논쟁’으로 부른다. 복지·노동·여성 등 체제 경쟁의 주요 관점들이 녹아있는 토론이었다.

평양 시내에 설치된 체제 선전구호판 아래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중앙포토]

소련 붕괴로 끝난 체제경쟁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가운데 어떤 체제가 더 나은가 하는 논쟁은 소련이 붕괴되면서 결론이 났다. 하지만 소련의 급속한 성장을 목도한 57년 전만 해도 한 쪽 체제가 붕괴되기 전이라서 치열한 체제 선전이 불가피했다. 부엌논쟁에서도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는 가시 돋친 설전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흐루쇼프가 닉슨의 말을 자주 끊고 닉슨은 흐루쇼프에게 삿대질을 반복해 통역들이 진땀을 뺐다. 다음은 그들이 부엌 전시실을 떠나 다음 투어 장소인 박람회 내 TV스튜디오에서 주고받은 대화이다.


K=당신 매우 화가 난 것 같습니다. 마치 나와 싸우고 싶어하는 것 같군요. 아직도 화났습니까?


N=그렇습니다.


K=닉슨, 당신은 변호사였죠? 지금 신경과민입니다.


N=오 예스, 지금도 변호사입니다.


K=(참관 소감의 질문을 받고) 이번 박람회는 노동자들이 작업을 잘 마무리하지 않아서 정돈돼 있지 못합니다. 이것이 미국입니다. 미국은 얼마나 오래되었죠? (중략) 우리는 42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7년 후 미국 수준이 될 거고 그 이후 더 나아갈 겁니다. 우리는 당신네들 추월하면서 “하이”하고 손 흔들 건데, (중략) 자본주의로 살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지내십시오. 당신 문제고 국내 문제이기 때문에 우린 별 관심이 없습니다. (중략)


N=(중략) 우리를 앞지르려는 당신의 계획, 특히 소비재 생산에 있어서의 경쟁이 양국 국민과 세계 사람들에게 최선이 되려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교류해야 합니다. (중략) 아이디어를 너무 두려워 마십시오.


K=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쪽은 당신들이오.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N=그렇다면 더 교류합시다. 우리 합의한 것 맞죠?


K=좋습니다. (통역을 보면서) 지금 내가 뭘 합의했다는 거지?


N=(중략) 지금 저 테이프는 우리 대화를 바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중략) 소통 증대는 우리와 당신에게 가르침을 줍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모든 걸 알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K=내가 모든 걸 다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두려움 말고는 공산주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지금 토론은 불공정합니다. 방송 장비는 당신 것이고, (중략) 내 말은 통역되지 않아 당신 나라 사람들은 못 들을 겁니다. 이는 불평등한 조건입니다.


N=지금 여기서 당신이 하는 말은 미국에 다 알려집니다. 미국에 알려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하진 마십시오.


K=(중략) 부통령, 내 발언이 영어로도 방송될 것을 약속하십시오.


N=그럼요. 마찬가지로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이 통역되어 소련 전역에 전달돼야 합니다. 그게 공평한 거래입니다.


사실 체제 내부의 정보를 갖고 있는 최고 지도자들은 체제 경쟁의 판세를 대체로 잘 인지한다. 흐루쇼프도 소련 체제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오늘날 기업 최고경영자처럼 국가 지도자 또한 자기 임기 때의 실적을 부풀리고 실패를 숨기려는 동기를 갖는다. 국제관계가 체제 경쟁으로 점철되던 상황에서 체제 선전은 체제 지도자의 주요 과업 가운데 하나이다.


부엌논쟁에서 흐루쇼프가 닉슨에게 “당신은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변호사이고, 나는 공산주의의 변호인입니다”라고 말했듯이, 국가 지도자는 자신의 체제를 옹호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닉슨은 흐루쇼프가 상대 말을 자주 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유능한 변호사의 자질이 보인다고 비꼬았지만 미국 체제가 소련보다 한 수 위임을 강변했다.


검증할 수 없을 때만 통하는 허세열악한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고 선전하기 위해서는 주관적인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실은 발견되는 것뿐 아니라 만들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 수학적 진위는 만들어진 것이 많다. 예컨대 1+1=10이라는 틀린 진술을 십진법 대신에 이진법에서 바라보면 옳은 진술로 바꿀 수 있다. 관점을 다수의 시각에서 내 자신의 시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손으로 하늘도 가릴 수 있다. 남들이 멀쩡히 볼 수 있는 큰 하늘을 작은 손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주체사상이나 ‘우리식 사회주의론’도 그런 맥락에서 가능하다.


주관적 해석에 의존한 논증은 어떤 면에서 다원주의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사실이나 진실이 그 가정에 따라 바뀔 수 있더라도 일관성은 유지되어야 한다. 실증주의나 일원주의에 반대한 주관적 관점을 받아들일 수는 있으나, 자신의 것만 옳다고 강변하거나 그 이탈된 체제 내에서 또 다른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 주관적 관점은 자기모순이다. 실증적 사실보다 주관적 해석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주관적 해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인 또는 일당의 독재만을 인정하는 자신의 체제를 선전하는 것은 모순된 주장일 뿐이다.


대체로 선전은 과장 광고를 지향한다. 특히 체제 선전은 글자 그대로 ‘아무 내용 없이 목소리만 높인’ 허장성세(虛張聲勢) 또는 ‘말로만 매우 많은’ 호왈백만(號曰百萬) 또는 ‘꽃 없는 나무에 조화로 꽃 피우는’ 수상개화(樹上開花)의 방식이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이 자주 사용한 허장성세의 전략, 예컨대 소수의 인원이 나뭇가지를 끌고 다녀 먼지를 많이 일으켜 군대 규모를 커보이게 하거나 또는 성문을 활짝 열어 놓고 상대가 함정이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전략은 투명하게 검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통한다. 개방되었을 때에는 과장되거나 주관적인 선전이 잘 통하지 않는다.


남북문제도 개방과 교류로 풀어야부엌논쟁에서 닉슨과 흐루쇼프 공히 공존과 교류를 강조했지만, 미국 체제와 달리 소련 체제는 그 속성상 전면적 개방이 불가능했다. 64년 흐루쇼프는 실각했고, 그 후 소련 체제는 당장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실질적 체제 경쟁력은 더욱 떨어지게 되었다. 66년에는 소련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흐루쇼프의 공언은 실현되지 않았고, 오히려 91년 소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개방은 체제 경쟁의 객관적 평가를 가능하게 하고 또 체제 경쟁력을 제고시킨다. 미국이라는 패권국의 지속은 개방에 기초한다. 고대 로마의 흥성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이른바 G2 등극도 고양이 색깔보다 쥐를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描論)’을 받아들이면서 가능했다. 열악한 체제도 주관적 해석을 입혀 선전할 수는 있지만, 개방에 처하게 되면 그런 주관적 선전은 오래가지 못한다. 체제 우위는 개방을 통해 모색할 수밖에 없다.


남북한 간의 체제 선전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남한 내의 갈등이 강도와 빈도에 있어 더욱 증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여야 간, 계층 간, 지역 간, 이념 간의 갈등에서도 체제 선전 수준의 관념적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개방과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실에 기초한 실증적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김재한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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