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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고 짜증나는 여름 겪을 평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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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호 31면

이달 7일 미국과 한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설명한 것처럼 이번 결정은 군사적 이유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제 북한과의 대화는 구미가 당기지 않으며 더 강력한 압박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를 깔고 있기도 하다. 미국은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하는 대신 핵 활동을 중단한다는 2012년의 합의가 무위로 돌아간 뒤 새로운 대화에 나서기 어려운 입장이다. 특히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계속하는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에 행동에 나서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 이달 6일 미국 재무부가 인권 유린 혐의로 김정은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는 등 더 광범위하고 엄격한 제재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사드 배치는 북한에 대한 제재 강화의 일부로 해석된다.


물론 북한이 사드 배치 결정에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예측한 대로다. 김정은을 제재 대상으로 선정한 것에도 ‘선전포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표현은 무시무시하게 들리지만 사실 북한은 1997년부터 적어도 200회 정도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따라서 비록 진짜 공격이 임박했다는 뜻이 아닐지라도, 북한이 매우 싫어한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북한의 첫 번째 응답은 이달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는 것이었다. 이튿날 북한은 “(유일한 북·미 대화 통로인) 뉴욕 채널을 차단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4일에는 사드 배치 지역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위협했고, 19일에는 동해로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중국이 적대적 첫 반응을 내놓은 것 역시 완전히 예측한 대로다. 베이징의 보수파들은 전부터 사드 배치가 중국을 자극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하지만 극단적인 분노는 잠시였다. 중국이 사드가 배치되는 성주를 향해 미사일을 조준해야 한다고 주장한 환구시보 기사는 재빨리 신문사 웹사이트에서 사라졌다. 이후 중국 매체에서 사드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적다. 이런 종류의 침묵은 주로 공산당 지도부가 사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은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중국은 사드의 X밴드 레이더가 북한보다 중국의 미사일에 대한 조기 경보 체계로 작동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노한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에 이미 이 레이더를 배치했고, 이를 탑재한 이지스함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달라질 것이 별로 없다. 또 중국은 비록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동맹국인 북한의 무책임하고 터무니없는 행동이 없었다면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안다. 평양이 베이징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사드보다 중요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이달 12일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의 중재 재판소는 중국의 남중국해 구단선은 무효며, 암초 위에 인공섬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시진핑 외교는 또다시 심각한 좌절을 겪은 것이다. 시 주석은 경제성장 둔화나 부패와의 전쟁 같은 문제점을 안고 올 여름 원로들과의 ‘비공식’ 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와 내년 겨울 19차 당대회를 치러야 한다.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정치국 상무위원 5명 전원이 은퇴하는 내년 당대회는 시 주석에게는 큰 시련이 될 수 있다. 반시진핑 세력이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필리핀에 이어 베트남도 유엔해양법협약 제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시 주석의 주요 관심사는 사드가 아닐 것이다. 사드 발표로 인한 첫 충격은 지나갔고 실제 배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중국 내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내년 당대회까지 배치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중국의 외교 역량을 유엔해양법협약 문제에 모으고 있다. 사드에 관해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드 배치가 발표됐을 때, 북한은 중국과의 관계를 재건할 선물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미국과의 대화 채널을 단절한 이유일 것이다. 만약 북한이 중국과 더 가까워질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미국과의 관계를 끊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평양은 중국이 사드에 대해 크게 반발해 유엔 안보리의 재재를 완화시키고 평양과 더 긴밀하게 협조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다른 때라면 평양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사드는 유엔해양법협약 판결에 묻혔다.


실제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넘나드는 물품의 양은 전혀 늘지 않았다. 중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했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없다. 베이징이 평양과의 관계를 바로잡기로 결심했다는 어떤 신호도 없다. 만약 중국이 이런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다면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재빨리 알리는 방법을 확실히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드 배치 발표 2주가 넘도록 이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한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드 배치는 탄도미사일로 한국(물론 미군 부대도 포함해서)을 공격하겠다는 북한의 위협이 실현될 가능성을 대폭 낮춘다. 정교하지 못한 북한의 미사일은 사드로 막아내기에 비교적 쉬운 편이다. 북한이 미사일 성능을 개량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사드 배치 이후에 북한이 장사정포와 다연장 로켓의 사거리에 닿는 한국 수도권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할 것이라고 본다. 미군 기지를 목표에서 제외해 미국이 반격에 참여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다.


이처럼 사드 발표는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날 기회가 되지 못했다. 중국의 반응은 미지근하고 러시아의 원조는 충분치 않다. 옛 친구들인 우간다와 나미비아는 북한과의 협력을 끝내겠다고 발표했다. 미국과의 관계는 교착상태에 있고, 일본과 대화를 나눌 것이라는 어떤 신호도 없다. 한국과의 교류는 거의 끊긴 상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은 무엇을 할까? 북한 지도부는 국내외로 힘을 계속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일단 사드를 배치한다고 한국이 북한의 모든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포격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런 행동은 큰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수준밖에 안된다. 북한의 외교 정책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 다른 나라들은 평양이 원했던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고, 북한의 우호국들은 꾸준히 움츠러들었다. 나는 북한의 지도부가 이런 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찾지 못했다고 본다. 평양의 올 여름은 덥고 짜증나는 계절이 될 것이다.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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