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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독자투고] 여고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려면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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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설치한 제보함이 철거됐다

여성의 전화와 함께 교내에서 진행했던 ‘사소하지 않은 제보’ 캠페인의 제보함이 전부 사라졌다. 1교시 자습이 끝나고 학생부장 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제보함은 거기에 있었다. 요는 제보함을 철거하라는 거였다. 처음 나온 표면상의 이유는 이미 학교와 학생회 측에서 건의함 제도를 통해 학생들의 불만을 접수하고 있다는 거였고, 조금 더 이야기하다 나온 진짜 이유는 그런 제보함이 있으면 학생들이 악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선생님들이 수업 중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학교 측의 허락을 구하지 않은 무단게시물'인 제보함은 그렇게 20시간만에 철거당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겪어온 여성차별적 언어폭력에 대해 처음으로 항의하기로 결심했을 때, 나를 가장 망설이게 했던 건 신고자로서 겪게 되는 관계 악화나 귀찮음이 아니라 제 3자의 시선이었다. '쟤는 왜 저렇게 예민하게 굴지' 라는 그 시선이 가장 두려웠고, 가끔 그와 비슷한 말이라도 들으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그리고 이는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불편함'이 그저 '예민함'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두려워서 신고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너 때문에 분위기 나빠지면 책임질 거냐”,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민감하냐”,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냐”,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피해자를 위한 걱정의 말이든 혹은 협박의 말이든 간에, 피해자를 입막음하고 신고를 망설이게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피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또 다른 공격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불편함을 참아가면서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그런 피해를 입었을 때 직접 항의하거나 학생회를 통해 건의할 수 있는데 왜 그런 제보함이 굳이 필요하겠느냐고 한다.

"사망할 년이라 3학년이냐?"


우리 학교에서 약 250명의 학생들은 “사망할 년이라 3학년이냐?”(A 선생님)와 같은 말을 수업 시간에 들었다. 80명쯤 되는 학생이 “블라우스 단추를 왜 풀고 다니냐. 야해 보인다”, “페미니스트는 정 없고 사교성 없는 사람들이다”, “높은 이혼율은 기가 세고 생활력 강한 여성 때문이다”(B 선생님)라는 말을 수업시간에 들었다. 최소 40명의 학생이 “오빠 차 뭐예요?” 라며 여성을 비하하고 희화화하는 말을 들었다. 복학생이 새내기 여자 후배에게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치근대면 여자는 차종을 확인하고 탈지 말지를 선택한다는 걸 수업중 ‘대학생활에 대한 여담’으로 들어야 했던 거다. 동시에 “멍청하면 남자가 똑똑하면 되고, 돈이 없으면 남자가 돈이 많으면 된다. 하지만 못생긴 여자는 안 된다” (C 선생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전교생 450명은 '여자애들은~' 으로 시작하는 말을 거의 매일 듣는다. 대부분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력이 약하고 주위 환경에 잘 휘둘린다는 게 그 이야기의 요지다. 올해엔 폐지됐지만 2014·5년에는 바지 교복을 입으려면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해야 했다. 교칙에도 없는 지시였다. 학생들은 ‘생리통이 심하다’는 소견서를 가져가야만 치마 교복을 입을 수 있었고, 일단 바지 교복을 선택한 이들은 치마 교복을 입을 수 없도록 학교에서 명단을 관리했다.

3년간 단 두 명만 이의를 제기했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아내가 좋은 아내입니다. 여러분도 좋은 아내가 되도록 하세요”(D 선생님)라는 말을 300명의 학생이 들었다. 그리고 그 중 단 한 명만이 직접 이의를 제기했단다. 그것도 3년만에. 나까지 겨우 두 명인데, 그마저도 다른 학년 학생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생들에게는 "편안한 마음으로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창구가 이미 충분히 있는데 왜 그런 제보함이 또 필요하냐고 하신다. 그래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명이 그 창구를 정말 큰 결심 끝에 찾아왔는데, 그 창구라는 곳은-제대로 운영된 적이 없으니- 매뉴얼조차 없는 허술한 곳이었나 보다.

그래서 만든 게 ‘사소하지 않은 제보’였다. 학교에서 겪은 여성차별을 고발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주변의 시선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누구도 그 문제를 '예민함' 따위로 치부해 버리지 않는 곳에서 편안하게 여성차별을 고발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자는 결심으로 시작한 일이다. 학교 창구를 3년동안 한 명이 방문했다면, ‘사소하지 않은 제보’는 20시간 동안 세 명의 제보를 받았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두 번째 이유는 그런 제보함이 있으면 교사들이 발언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원래 그렇게 해야 한다. 여성차별적 발언을 하지 않기 위해 신경 써야 한다. 누구나 성으로 인해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해자 입장에선 차별적 발언을 해도 지금까지처럼 다들 입 다물고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참 행복하겠지만, 우리는 전혀 아니다.

여전히 학교와 페미니즘은 멀다

어쨌든 제보함은 철거 결정이 났다. 끝까지 버텼어도 괜찮았겠지만,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해서 물러나 버렸다. 사실 페미니즘이 가볍고 재미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아직 그런 '재미있지 않은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기에는 학교 문화가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여전히 학교와 페미니즘은 멀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사소한 일이란 없다는 것이다. 학교가 움직이지 않겠다면, 우리가 움직여야지 어쩌겠는가. 사소하다고 여겼던 주변 일들에 관심을 더 갖고, 어디까지가 차별인지도 생각해 보고, 남의 불편함을 예민함으로 치부해 버리지 말고, 피해를 입었다면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하고 대응하자는 거다. 무관심은 차별을 키운다. 행동한다면 분명히 사회는 변화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함부로 상처 줘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여성은 남성의 성적 대상물도, 자기결정권이 없는 사람들도 아니다. 여성도 존엄한 인간이다. 그 권리들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면, 눈치 볼 필요 없이 당당하게 요구해도 된다.

"수치심 유발은 지배와 배제의 가장 손쉬운 수단이고, 회피와 냉소적 반응이야말로 가장 흔한 복종의 수단이다. 수치심으로 도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공간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나의 페미니즘 레시피』(장필화, 서해문집)

더 이상 배제되고 싶지 않은 우리를 위해, 이제 사소하지 않았던 일들을 당당하게 외칠 때이다.

글=익명의 페미니스트(J여고 3)

독자 투고 접수: t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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