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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레터] 진실한 사람과 배신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88호 1 면

??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장을 지내고 총리 후보에까지 올랐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2013년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능력이나 전문성 위주로 인사를 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를 더 따지는 것 같다.가끔 법조인 인사에 대해 내게 물어봤는데 첫째,겸손하냐, 둘째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를 물어보더라."?? 배신의 트라우마가 짙게 남아있는 박 대통령이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인선의 신조로 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릅니다. 여론의 비판과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첩 인사'를 고집하는 걸 보면서 내심 그만큼 배신의 트라우마가 깊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해해보려고도 했습니다.4월 총선 공천과정에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한 사람을 뽑아달라"며 승부수를 띄운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라고도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역시 동티가 나는군요. 바로 이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진실한 사람'들 때문에 대통령 자신이 코너로 몰려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이 처가 소유의 빌딩을 넥슨 김정주 회장에게 팔아넘긴 것을 둘러싸고 우병우-진경준-김정주 커넥션 의혹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총선때 '진박 감별사'를 자처한 최경환·윤상현 의원이 서청원 의원 지역구(경기 화성갑) 출마를 희망하는 김성회 전 의원을 압박·회유하는 내용이 담긴 전화 녹취록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조폭을 연상시킬만큼 저급한 대화 내용도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만 노골적으로 박 대통령의 의중을 팔며 협박성 발언을 하는 대목에선 듣는 이가 오히려 민망해집니다.?? “그것이 VIP(대통령) 뜻이 확실히 맞는 거예요?”라는 물음에 “그럼,그럼.옆(선거구)에 보내려고 하는 건 우리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것이고…”라며 노골적으로 박 대통령을 팔고 있습니다. "대통령 뜻이 어딘지 알잖아,형. 거긴 아니라니까.경선하라고 해도 우리가 다 만들지.친박 브랜드로.서청원·최경환·현기환 의원 완전 (친박) 핵심들 아냐”라는 대화도 나옵니다. 말끝에 슬쩍 "형,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라며 협박성 멘트도 끼워넣습니다. '진실한 사람' 을 앞세운 추잡한 '박심 팔기'의 전형이자,평소 이들이 친박 실세임을 내세워 얼마나 호가호위해왔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녹취록이 청와대의 총선 개입 논란으로 비화되면서 박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그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감탄고토(甘呑苦吐)요,얕은 꾀로 자신의 이익만을 쫒는 비열함의 극치 아닙니까. 녹취록이 문제가 되자 친박의 좌장이라는 중진 의원은 기껏 "음습한 정치 공작"이라고 맞받았더군요. 자신에게만 불똥이 튀지 않으면 그만이란 건가요. ?? 친박계 맏형으로 불리는 다른 의원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성주 배치에 항의하는 성명서에 버젓이 이름을 올렸더군요. 자신이 앞장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설명하고 국민들을 설득해도 모자랄 판에 비판 대열에 합류하다니요. 이러고도 '진박'이고 '성공한 대통령' 운운한 자격이 있습니까. 이들 친박 의원들은 또 대통령 외유중 황교안 총리 일행이 성주군민 시위대로부터 계란 투척을 받고 감금되는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거 땐 "대통령의 성공을 돕겠다"며 진박 마케팅으로 배지를 달고는 정작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하는 상황이 되니 꽁무니를 빼는 모습이라니요.?? 박 대통령 팔아서 당선된 사람들,친박의 핵심을 자처했던 사람들이라면,당장의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시위 현장으로 달려가 군민들을 설득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시위대를 설득하고 기꺼이 물 세례든,계란 세례든 감수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그게 최소한의 정치 도의이자 배신자를 끔찍히도 경계했던 박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의리 아닐까요.


?? 이번주 중앙SUNDAY는 임기말 레임 덕(lame-duck) 징후를 보이며 세포 분열에 들어간 새누리당 친박계를 집중 해부하는 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녹취록 파문등 잇단 악재가 터져나오면서 대표 경선이 시계(視界) 제로의 혼돈 상태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경선 판세 분석과 비박계의 단일화 성사 가능성,전당대회를 기점으로 한 당내 역학구도와 세력 재편 움직임등을 자세히 보도합니다.?? 또 지난주 돌발적인 터키 쿠데타 발발로 보류됐던 '이미 현실로 다가온 미래-로봇전쟁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마침내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고 막을 내린 미국 공화당의 전당대회를 현장에서 지켜본 중앙일보 특파원들이 전하는 생생한 전당대회 소식과,경마·축구·농구에 이어 야구까지 근절은 커녕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스포츠 승부조작의 문제를 심층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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