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9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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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원래 주루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술을 따르며 시중만 들게 되어 있잖아요?"

맹씨의 질문은 몸은 팔 수 없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마님도 순진하시긴. 법에는 그렇게 되어 있어도 어디 법이 법입니까, 밥이지."

"법이 밥이라니?"

"아, 글쎄, 법을 어겨야 밥이 생기고 또 법 어긴 것을 꼬투리로 삼아 밥을 챙기는 작자들이 있으니 법이 법이 아니라 밥이란 말씀이지요."

"그래 주루에서 몸을 팔다가 걸린 성병 때문에 셋째 부인이 죽었다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이건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서문대인이 어디서 병을 얻어와서 옮겼을 수도 있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마님도 다 겪으셨겠지만 남자들이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다가 이상한 병들을 가지고 와서 부인들에게 옮기는 일이 많다 이거지요. 그러니까 마님도 그 집에 들어가셔서 그 점을 늘 조심하시라 이거지요."

"그럼 지금도 그 어르신이 성병 같은 것에 걸려 있는 건 아닐까?"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을 거예요. 서문대인이 누굽니까? 청하현에서 제일 가는 생약 가게 주인이지 않습니까? 성병에 좋은 생약들은 죄다 꿰고 있을 텐데 성병을 그대로 놔둘 리가 없지요."

"그런데 셋째 부인은 왜 죽게 내버려두었나요?"

"약을 써도 워낙 몸이 약해져 있어서 잘 듣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성병이라는 게 한번 걸리고 두번 걸리고 하다 보면 약으로도 어쩔 수 없는 지경이 된다더군요. 처음에 제대로 잡아야 하는데. 둘째 부인도 사실은 가관(歌館)에 있었기 때문에 몸을 팔았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주루에서 놀던 셋째 부인하고는 질이 다르지요."

질이 다르다는 말이 묘한 어감을 지니고 있기도 하였다.

"주루에서는 술만 따라주어야 하는데 몸도 팔고, 가관에서는 노래만 불러야 하는데 역시 몸도 판다 이거군요. 가관에 모이는 손님들은 그래도 돈 많은 고급 손님들이기 때문에 질이 다르다 이건가요?"

"말하자면 그렇지요. 화류계도 등급이 있잖아요. 제일 하류에 속하는 것을 와사(瓦舍)라고 하지요. 한번 하는 데 기와처럼 값이 싸고 기와 깨어지듯 금방 해치운다고 해서 와사라고 하는 모양이에요. 그야말로 사창가지요. 주로 멀리까지 원정 나온 병사들을 상대로 하는 곳인데 돈이 별로 없는 평민들도 자주 찾아가지요. 와사 다음이 주루, 주루 다음이 가관 이런 식이지요. 기생들은 처음에는 가관에서 그런대로 대접을 받다가 나이가 들어가면 차츰 가관에서 주루로, 주루에서 와사로 내려가게 되지요. 그러다가 와사에도 들어갈 수 없는 여자들은 거리에서 요 하나 달랑 깔고 그냥 몸을 팔지요."

"우리 남편도 옷감 구하러 먼 지방으로 가서 가관 같은 데 가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맹씨 표정이 잠깐 이지러졌다.

"그야 두말 하면 잔소리죠. 그런 재미도 없이 남자들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벌려고 하겠어요? 남편이 멀리 갔다가 무슨 좋지 않은 병이라도 걸려 왔나요?"

양씨가 인도로 진귀한 물품을 구하러 갔다가 도중에 강도를 만나 죽었다는 말도 어쩌면 거짓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설씨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건 아니고요. 우리 남편도 다른 남자들처럼 그랬나 하고요."

맹씨가 얼른 얼버무렸다.

"서문대인도 복 받았지. 지금 첫째 부인으로 있는 오월랑 마님을 빼고는 다 그 출신들이 시원찮은데 마님 같은 부인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말이오. 게다가 인물 좋겠다, 재산도 많겠다, 월금(月琴)도 잘 타겠다, 이런 규수감이 어디 있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호호. 그런데 사실 나도 복받았지요. 이게 다 아주머니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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