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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굿바이 싱글' 김태곤 감독 인터뷰, "귀엽고 대견한 나의 첫 상업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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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됐고, 아이가 필요하다. 아이만큼은 영원한 ‘내 편’일 테니까. ‘국민 진상’이란 낙인이 찍힐 정도로 철딱서니 없는 여배우의 생각이라지만, 전례 없는 폭탄 투하 같은 발언에 주변 인물들은 혼비백산이다. ‘굿바이 싱글’(6월 29일 개봉, 김태곤 감독)은 골드 미스 톱스타 주연(김혜수)의 이러한 선언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주연이 임신한 여중생 단지(김현수)를 우연히 만나고, 아이를 사이에 둔 모종의 거래를 제안하며 벌어지는 이 유쾌한 코미디에 이미 200만 명 넘는 관객이 화답했다. 독립영화 ‘독’(2009) ‘1999, 면회’(2013) 등을 연출하고 ‘족구왕’(2014)에서 각본과 제작을 맡았던 김태곤(36)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10대 미혼모와 대안 가족 같은 화두를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 안에 녹인 솜씨가 돋보인다. 반면 중반까지 풀어놓은 문제들을 성급히 수습해 버린 듯한 후반부가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진상 톱스타에 10대 미혼모까지... 그래도 귀엽고 대견한 나의 첫 상업영화

개봉 4주 차에 접어든 지금, 김 감독은 어떤 성취감과 아쉬움을 느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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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곤 감독이 9일 영화 `굿바이 싱글` 시사회가 진행된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영화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양광삼 기자

Q. 시나리오 원안을 1년 정도 다듬었다고.

“기본 골자는 그대로지만 원안 분위기가 훨씬 무거웠다. 캐릭터를 조금씩 손보고, 미혼모 문제를 다룸에 있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다듬었다.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의 구도는 피하고 싶었다. 코미디를 표방한 이상 너무 심각하게 파고들면 보는 사람도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Q. 시상식 드레스와 소신 발언으로 화제가 되곤 했던 김혜수의 실제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들도 있는데.

“김혜수와 고주연을 분리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둘 사이의 교집합을 완전히 덜어 내는 건 이상할 것 같았다. 그걸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했다. 주연은 화장실에서 젊은 여자들이 ‘(연예계에서 그렇게 오래 활동하다니) 화석이니?’라 욕하는 걸 듣는다. 그 대사는 배우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몇 초간 정적이 흐른 뒤 ‘재미있네’라고 하더라(웃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연의 과거 사진은 실제 김혜수의 사진이다. 주연의 화보는 전부 새로 찍었다.”

Q. 제작사(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는 김혜수의 실제 소속사이기도 하다. 캐스팅에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물론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김혜수가 물망에 있었다. ‘그가 캐스팅되면 연출을 맡겠다’고도 했다(웃음). 하지만 알다시피 김혜수 같은 톱스타가 회사 결정에 의해 쉽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일단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 했고, 주체적인 여자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도 좋게 봐준 것 같다. 소재는 민감한데 장르는 코미디인, 쉽지 않은 영화에 배우가 용기 내서 몸을 던진 것이다. 미숙한 연출로 그의 경력에 흠을 내거나 관객의 비웃음을 사게 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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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 아역배우 김현수 스틸컷 [중앙포토]

Q. 단지를 연기한 김현수는 ‘도가니’(2011, 황동혁 감독)에서도 출중한 연기를 보여 준 10대 배우다. 그 캐스팅도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다.

“김현수는 또래 배우들이 으레 그렇듯 예쁘게 보이려고 하거나 튀려고 하는 배우가 아니다. 스스로 고민해서 얻은 표정과 연기를 보여 주려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장르가 코미디이다 보니 좀 더 통통 튀고 귀여운 매력이 도드라지는 배우를 캐스팅하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단지를 연기하는 배우가 진짜 감정을 연기하지 않으면 영화 전체가 무너지는 구조였다. 그 점을 더 높이 샀다. 김혜수와의 호흡도 좋았다.”


Q.
갈등이 정점에 치닫는 사생 대회 장면의 만족도는 어떤가. 코믹에서 감동으로 분위기를 전환해야 하는 장면이다.

“억지로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는 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관객을 울려야 한다’가 아니라 ‘주연의 희생이 우스워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장면을 만드는 내 기조였다. 단지를 내치려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주연이 단지를 감싸며 하는 말들은, 진짜로 그가 할 법한 이야기여야 했다. ‘얘 이렇게 만든 애는 국가대표로 미국에 갔다니까요. 근데 왜 얘는 그림 하나도 마음대로 못 그리게 해요. 아, 진짜 어른들 너무하네’라는 대사처럼, 관객에게 커다란 울림까지는 아니어도 진심 어린 말들로 다가가려고 했다. 음악을 최소한으로 사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Q. 주연이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단지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가 또렷이 보여야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걸 결국 다 주연의 입을 통해 대사로 쏟아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어바웃 어 보이’(2002, 크리스 웨이츠·폴 웨이츠 감독)에서 윌(휴 그랜트)은 아이와 함께 연주하잖나. 그런 식으로 만들었으면 표절이라는 말이 나왔을 거다(웃음). 주연은 편견 어린 시선으로 단지를 바라보는 어른들 사이에서 확실하게 단지의 편이 되어 준다. 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장면으로써 가치가 있다고 봤다.”

Q. 10대 미혼모라는 민감한 소재를 영화에 반영하면서 어느 지점까지 고민했나.

“미혼모 센터를 취재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했다. 아는 것 없이 아무렇게나 묘사해서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소재로 감정 팔이 한다’는 말은 듣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미혼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뾰족한 해답은 없다. 다만 단지 같은 아이를 길에서 만난다면, 그 아이에 대한 내 태도는 ‘굿바이 싱글’을 만들기 이전과 지금이 분명 다를 것이다.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거지. 관객에게도 이 영화가 딱 그 정도 역할을 하면 좋겠다.”

Q. 대안 가족이라는 화두가 극 중 인물 간 갈등을 봉합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한 듯하다.

“대안 가족이란 소재를 염두에 두진 않았다. ‘인간관계는 왜 이렇게 외롭고 힘들까’를 생각해 보면, 이기적인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걸 아까워하지 않고, 남들을 기꺼이 돕는다면 덜 외롭지 않을까. 그 정도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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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바이 싱글` 식사 장면 [중앙포토]

Q. 다 같이 무언가를 먹는 장면이 유독 많다. 식구(食口)라는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인가.

“아마 맞을 거다. 내가 워낙 먹는 걸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웃음).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 터놓고 맛있는 걸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Q. 전작들과 이번 영화 모두 성장담인 동시에, 인물들이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려야 깨달음을 얻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인간은 뭔가를 잃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고통이 닥칠 때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다들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 모습을 발견하는 게 재미있다.”

Q. 첫 상업영화 연출인데, 촬영 현장에서 당황하기는커녕 매 순간 상당히 의연했다고 들었다.

“당황할 일은 오히려 독립영화 찍을 때가 훨씬 많다. 섭외가 갑자기 펑크 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런 훈련 덕분에 어느 정도 의연해진 것 같다(웃음). 제작비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더욱 전문적인 제작 환경이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감이 생겼다. 시나리오를 만질 때부터 촬영이 끝날 때까지 난 이 영화를 믿었다. 촬영하면서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질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난 ‘굿바이 싱글’이 대견하다. 자기 갈 길을 열심히 잘 걸어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Q.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내가 재미를 느낄 만한 영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아는 척하지 말아야 한다. 남들이 갖다 붙인 의미에 매몰돼 그 허상을 좇는 감독도 분명 있다. 조금 촌스럽고 직설적이더라도, 내가 아는 캐릭터와 말들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때론 사람들이 날 근사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버릴 때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앞으로도 그렇게 걷고 싶다.”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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