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논술고사|박문재<시인·서울진선여고교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13일 대입논술고사가 처음 실시되었다. 이는 단순한 지식을 묻는 시험이 아니라 주어진 제목·자료에 따라 논리에 입각한 진술(글)을 하게 함으로써 수험생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평가하기 위한것이다.
이번 논술고사를 보면 대부분 탈 교파서적이었다. 인문계는 인간의 삶·대학생활·외채·속담·작품 등을 주제로 삼았고, 자연계는 산업사회와 공해·에너지·재해·과학의 발달과 인류의 미래 등을, 일부 여자대학에서는 남녀평등·여성과 예절 등 여성들의 관심사를 문제로 내놓았다.
생활 주변의 상식적·보편적·일반적인것을 소재로 하여 출제하겠다는 원칙과는 달리 포괄적·추상적이며, 철학적인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문제도 있어 수험생을 지도하는 교사조차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자료제시형 중에는 자료가 너무 길고 차원이 높아 단독과제형보다 더 어려웠다는 학생들도 많았다.
어려서부터 사지선다형문제에만 익숙한 우리 학생들에게는 논술식 전개가 힘들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에서 작문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은 한계가 있다. 이번 논술고사 문제는 분명히 소화하기 어렵고 벅찬, 전혀 낯선 음식이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때 이번 논술문제는 첫시험 치곤 주제가 너무 거창하고 학생들의 의식수준과는 거리감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대학 나름대로의 출제의도가 있었겠지만 일부 대학의 문제는 너무 막연해서 감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첫출제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더라도 객관식 위주의 대학입시에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논술고사가 생긴 것은 반가운 일임엔 틀림없다. 따라서 이 제도가 잘 정착돼 현행 입시제도의 결함을 조금이나마 보충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마리 새가 높이 날기 위해서는 수많은 날개 짓을 해야하고 거기에는 시련과 고통이 따른다.
따라서 학생들도 논술문이 하루아침에 술술 나오는 것은 아니므로 평소에 일기 쓰기·책읽기와 독후감 쓰기·신문사설을 읽고 스크랩하기 등의 힘들고 어려운 날개짓을 많이 해야 한다.
오늘부터 나도 학생들보다 최소한 열번 이상의 날개짓을 부지런히 해야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