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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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7편이었다. 대체로 작품들의 제재와 그 구도의 규모는 큰 것이었다. 그런 큰 구도에 비하여 제재를 다루어 내는데 긴요한 내적 필연성의 불충분함이 일반적인 흠으로 나타나있다.
일제시대와 해방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작품「얼룩으로 초상」은 작가의 의도는 역사적 변동과 개인의 삶 사이에 빚어지는 반어적 사태를 그리려 했으나 주인공 박성도의 행적과 심리적 및 의식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홍우」는 한 중산층의 가정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으나 몰락할만한 타당성이 작품내에서 충분히 설정되어있지 않았다. 「지켜지는 문」은 작가의 긍지를 출판사와의 불협화속에서 밝혀 간 것이지만 주제의 비중이 약한 것이 장편으로서는 흠이 되었다.
「십우도」는 한 백정의 정신적 발전과정을 불교적 관점으로 추적한 역작이었다. 이를테면 한 가인의 의식의 어둠에서 깨임으로의 궤적을 일제시대부터 해방후까지 추적하는 중후한 주제와 시대와 개인의 관계를 서사적 펼침으로 다룬점은 높이살 만한 것이었으나 역시 작품 전체에 흐르는 인정할만한 논리적 연속성이 부족했다. 되풀이되는 숲의 묘사도 지루했고 주인공의 정치적 전신도 어색했다.
그러나 그 큰 구도를 대담하게 잡고 겨룬 점은 인정되었다.
끝으로 「자결고」는 문장이 수사적 수준에서는 거칠긴 하나 이야기를 이끄는 힘에 있어서 확신감이 있는 문장으로 호감이 갔다. 이 작품에서 이순신의 정신풍경과 부속적인 인물인 김이의 보조적 조명은 작가의 한 상상력의 소산으로서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문서화된 역사적 사실속에 숨겨진 심리적 동향을 상상적으로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긍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김이를 과대하게 이용하려 한데서 결함이 드러났다.
심사위원: 신동욱, 최종율,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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