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자 “주민 2만3000명에게 손편지” 낙동강 물전쟁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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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물을 식수로 쓰는 경북과 경남 사이 10년간의 ‘물 전쟁’, 주민 간의 유혈사태를 불렀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문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건설….

밀양 송전탑 지역구 조해진 전 의원
“외부인 아닌 주민이 대화 중심 서야”
경주방폐장 결정 당시 이희범 장관
“안전 관련 투명한 정보, 보상도 제시”
강정마을 지역구로 둔 위성곤 의원
“주민을 계속 코너로 몰아선 안 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성주 주민들의 집단 반발 이전에도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적지 않았다. 당시 갈등에 직면했던 당사자들은 사드 갈등에 어떤 충고를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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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계란세례를 맞으면서 낙동강 주민 설득=경북과 경남은 낙동강 물을 놓고 10년간 전면전을 벌였다. 상류의 경북은 경제를 위해 공단을 짓겠다고 나섰고, 하류의 경남은 생존권을 내걸고 반대했다. 지난 2001년 정부는 공단지역에 5000억원의 ‘물 사용 분담금’을 물리는 특별법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갈등의 중심에 섰던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뒤 현지에서 첫 주민 간담회를 하는데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았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내 모습을 본뜬 인형의 화형식까지 지켜봐야 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장관은 상황을 어떻게 돌파했을까.

그는 “주민 2만3000명에게 손수 편지를 썼다”며 “계란 세례를 맞으면서도 200번 넘게 주민들을 만나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낙동강 수계관리 특별법’은 주민 동의를 얻고 2002년 국회를 통과했다. 그는 법이 통과된 뒤 다시 2만3000통의 감사 편지를 돌렸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이번 사드 갈등은 거버넌스(Governance·협치)의 시대로 바뀌었는데도 정부가 여전히 과거식 거버먼트(Government·통치)로 일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지역사회가 지분을 갖고 참여하지 않으면 어떠한 사업도 추진하기 어렵다”며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 직접대화가 어렵다면 중립적인 제3의 지대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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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외부 세력이 악화시킨 밀양 송전탑 갈등=지난 2005년 정부는 신고리 원전의 전기를 운반할 송전탑을 경남 밀양에 짓겠다며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주민이 반대했으나 정부는 2008년 사업을 강행했다. 주민이 분신 자살하는 등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나서야 정부는 대화 채널을 열었다.

당시 지역구 의원이었던 조해진 전 새누리당 의원은 “송전탑 사업은 국책사업을 더 이상 전근대적 방식으로 추진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한 사례”라며 “포클레인을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정부를 주민이 몸으로 막으면서 사전에 성실한 대화가 있었다면 1년이면 됐을 사업이 7년 이상 끌게 됐다”고 말했다. 조 전 의원은 특히 “외부 세력이 개입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갈등을 부추겼던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나가 버렸고, 이미 송전이 시작된 지금까지도 외부인이 부추긴 갈등 때문에 공동체가 훼손돼 버렸다”며 “대화는 외부인이 아닌 이해 당사자들인 주민이 중심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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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혐오시설 유치를 희망하게 된 경주=지난 2005년 19년을 끌어 온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유치전으로 바뀌었다. 경주를 비롯해 군산·영덕·포항이 유치전에 뛰어들어 경주가 승리했다. 갈등이 경쟁으로 바뀐 건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 방폐장 유치 지역에 3000억원을 지원하고 한수원 이전을 확약하면서다.

당시 주무장관이었던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혐오시설인 방폐장과 안보시설인 사드는 경우가 달라 사드의 일방적 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경주가 방폐장을 수용한 이유는 지원이라는 ‘당근’도 있었지만 충분한 설명을 통해 방폐장이 안전하다고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성주는 갈등이 폭발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금은 사드의 안전성에 대한 투명한 정보 제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진구 전 경주시의장은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비로 주민들을 대전 연구단지로 데려가 모형을 확인하고 경제적 이점을 부각시키자 27%이던 찬성률이 90% 가까이 올랐다”며 “주민들이 찬성으로 돌아서자 사태에 개입하려던 외부의 시민단체가 끼어들 여지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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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갈등의 애프터서비스 없었던 강정마을=정부는 2007년 해군기지 후보지로 강정마을을 낙점했다. 당시 일부 주민들만을 상대로 유치 의견을 물어 공사를 강행하면서 주민과 정부는 소송전까지 벌였다. 대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줬고, 지난 2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대한 준공식이 열렸지만 주민들의 반대는 여전했다. 해군이 공사에 반대했던 주민 117명을 상대로 공사 지연의 책임을 물어 34억원의 구상권 청구를 했기 때문이다.

서귀포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은 “사업 결정 이전부터 주민들에게 제주 해군기지가 왜 강정마을에 와야 하는지 설득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함께 제시하면서 ‘백지화’ 가능성을 전제로 주민들에게 선택권을 줬다면 수용할 여지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갈등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는커녕 지금도 군은 수십억원의 구상금을 청구하면서 지역주민을 계속 코너로 몰고 있다”며 “성주에서도 총리에 대한 폭력을 이유로 강경책을 내세운다면 강정마을처럼 사업 이후에도 갈등이 치유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토연구원 차미숙 연구위원은 “예산으로 갈등관리기금을 만들어 갈등영향평가나 공청회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태화·안효성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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