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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제재 동참요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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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 정부는 리비아가 중동지역 테러행위에 관여해왔다는 이유로 동국에 대해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고 우리 정부도 이에 동참토록 요구, 우리를 그게 당혹시키고 있다.
「레이건」 행정부는 지난 7일 리비아에 대한 모든 상거래와 운송행위를 중지하는 조치를 내리고 다음 날에는 미국내의 모든 리비아 정부의 자산을 동결시켰다.
미국은 이 같은 제재조치의 실효를 얻기 위해 미국의 모든 우방에 대해 같은 조치를 취해주도록 요구하고 있다.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테러행위가 근절돼야함은 대의 상 이의가 있을 수 없고 세계적 대국인 미국이 그런 사명을 떠맡고 나선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같은 미국의 동참요구에 선뜻 응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은 미국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유감이다. 미국 정부는 그 같은 응징조치를 결정하면서 우방의 구체적인 현실을 고려하거나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더구나 테러행위가 최근 더욱 격화된 것은 미국정부의 이스라엘에 대한 지나친 지원에 그 원인의 일단이 있음을 미국은 인정해야 한다.
다음은 경제제재조치의 실효성 문제다. 지난 75년 미국이 리비아에 대해 첫 경제제재를 가한 이후 세 차례나 유사한 제재조치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일이다.
더구나 미국은 리비아의 테러관련에 관한 확증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리비아를 응징키 위한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이 경제제재냐 하는 것도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국조치에 동참키 어려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중대한 국가이익을 고려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리비아와 78년 1월 영사관계를 맺고 80년 12월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래 우리 정부와 경제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지금 리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우리의 제2의 해외건설 수주국이 돼있다.
정부집계에 의하면 지금 우리의 5개 건설업체가 1백억 달러 이상의 공사를 맡고있고 14개 업체가 지점을 개설, 2만 3천명의 인력을 보내놓고 있다.
그밖에도 우리 의료진 77명, 선교사 4명, 유학생 7명, 탁구코치 3명이 나가있다.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해온 리비아는 반제국·반식민·반이스라엘 정책을 추구하는 아랍 강경파 국가다.
따라서 그 대외노선이 북한의 그것과 일치하여 국제무대에서는 우리보다는 평양에 더 가까웠고 그 때문에 북한은 우리보다 7년이나 빠르게 리비아와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더구나 리비아는 쿠바와 함께 미국이 가장 싫어하고 적대해온 나라다.
우리가 그런 리비아를 오늘의 경제관계로 끌어올린 것은 우리의 크나큰 외교적 성과다.
미국의 동맹국 중 동참요구에 응한 나라는 아직 하나도 없다. 종래 미국의 시책에 비교적 적극 협력해온 영국과 일본·서독마저 동참을 주저하고 있다.
정부는 다른 우방들의 그 같은 대도를 고려하면서 까다로운 리비아를 상대로 어렵게 쌓아올린 우리의 국익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현명하고도 단호하게 대처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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