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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딱 맞는 숲 속 ‘맞춤집’ 다섯 채의 오중주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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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기자]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1>강원도 양구 포레스트 퀸텟

사람에게 노년이란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있는, 살아야 하는 때다. 보기 싫은 것 보지 않고, 하고 싶지 않은 것 안 할 수 있는….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해 놓은 집은 어떤 곳인가? 아침에 눈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무엇이길 바라는가?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처음 서연이 바랐던 것은 높은 천장과 대리석 바닥이었지만 결국 가장 원했던 것은 제주도의 푸른 바다였다.

강원도 양구의 포레스트 퀸텟 또한 이런 바람에서 시작돼 마련된 집이다. 북쪽으로는 북한강의 원류인 양구 서천이 흐르고 멀리 파로호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사명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있다. 이 산줄기에 다섯 채의 건물이 오중주(quintet)를 이루며 마을을 이뤘다.


작은 숲을 중심으로 초승달 모양으로 자리를 편 다섯 채의 집은 이곳에 도시 주거를 대신할 만한 삶의 터전을 심기로 한 다섯 명의 건축주에 의해 계획됐다. 친척이거나 가까운 지인이며 은퇴 후 아름다운 시골에서 모여 살기로 약속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건축가는 대지를 보는 순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숲을 가로지른 임도가 난 것을 제외하면 사람이 손댄 것이 거의 없었기에….

1 나지막한 산이 병풍처럼 집을 감싼다. 2 앞뒤로 모두 조망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건축주의 말대로어느 편에서 보아도 건물의 정면 같다.

이곳에 어우러진 집들은 같은 시기에 같은 건축가가 설계했지만 각각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앉아 있는 땅이 다르고, 살아갈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집은 주변 집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부터의 보호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주변 집들의 조망에 거슬림이 없어야 했다. 좁은 경사지에는 부분적으로 바닥을 올리고 기둥 위에 떠 있는 집처럼 보이게 건물을 높였다. 숲이 정면을 막고 있는 땅은 멀리 조망이 가능하도록 시야를 확보했다. 주어진 땅에 순응하는 건물들의 평면과 단순한 지붕들로 이루어진 마을의 모습을 보면,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한 건축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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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포레스트 퀸텟을 설계한 홍익대 이현호 교수는 다섯 명의 건축주와 그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원하는 집, 살고 싶은 집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나눴는데, 이 과정만도 6개월이 걸렸다. 모든 집들의 크기는 150㎡ 정도지만 사는 사람이 다른 만큼 공간도 달라야 했으므로 구조는 모두 다르다. 어떤 집은 앞과 뒤의 조망을 모두 만족시켜야 했으며, 경사가 가장 급했던 집은 그 경사를 활용해 거실의 조망을 더욱 살릴 수도 있었다. 낮은 곳에 있는 집은 옆집에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파로호를 향한 시선을 확보해야 하기도 했다.

이렇게 각각 다른 구성의 집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지님으로써 다양과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자연을 향해 열려 있는 정자와 같은 집들이라는 것이다. 건축가의 말을 빌리자면 “자연이 집 안을 지나가도록 둘레 친 집”이라는 것인데, 자연이 드나들게 집을 열어놓아 둔 것이다.

대부분의 생활공간은 한 층에 두길 원한다고 한다. 포레스트 퀸텟 또한 주방, 화장실, 창고 등은 최대한 밀집시키고 방과 거실은 바깥으로 두어 집약적이며 단순한 동선으로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한 보수적인 평면이다. 건축가는 “좋은 건축은 좋은 사람처럼 주위와 잘 어울리면서도 내면은 바르고, 멋을 내면서도 과장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3 집 앞의 숲 너머 먼 조망을 위해 건물을 높게 지었다.

4 가장 북쪽에 있는 이 집은 옆집보다 낮게 깔려 있다. 옆집에서의 시선을 고려하면서도 조망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5 경사가 급한 땅 위에, 어느 방향이든 자연을 
향해 열려 있는 집을 지었다.

이 사업의 성공적인 결과는 시니어 낙원을 표방하는 자치단체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시니어 낙원 프로젝트는 강원도가 2008년 말부터 도입한 정책이다. 다섯 가구 이상 주택을 신축할 경우 진입도로, 상수도, 지하관정 등 기반시설을 도에서 구축해 준다. 건축 규모에 따라 취득세, 등록세 및 재산세 감면 혜택도 있다.

최근 도시 탈출을 꿈꾸는 은퇴자가 많아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평창군 대관령면에는 어느 기업체 임직원들을 중심으로 38가구 전원형 주택을 추진 중이며, 양양군에도 19동의 전원 휴양주택이 인허가 작업 중이다. 충남 서천에는 은퇴자, 현직 교사, 회사원 등 34가구가 2009년부터 입주해 생활하고 있다.

건축가 이현호 교수는 “단독주택은 기성품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딱 맞는 맞춤복이 돼야 한다”고 한다. “가장 좋은 집이란 없고 자기에게 잘 맞는 집이 있을 뿐”이라는 이현호 교수의 말은 건축가라면 늘 품고 있어야 하는 말이다. 얼마 전에 본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교수의 말과 함께.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 개론의 시작입니다.”

글 최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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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철씨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라는 공간의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건축가다. 이 같은 생각을 갖고 국가건축 정책위원으로 활동했다. 단우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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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중앙선데이 제제267호에 게재됐던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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