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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21년 전 범죄 혐의 때문에 귀화 불허는 가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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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외국인에게 21년 전 범죄경력 때문에 귀화를 허가하지 않는 것은 가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부장 장순욱)는 대만 국적의 왕모(58)씨가 “일반귀화 불허가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왕씨는 1958년 대한민국에서 대만 국적의 아버지와 대한민국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거주(F-2) 자격으로 국내에 체류했다. 2002년부터는 영주(F-5) 자격을 취득해 현재까지 국내에 체류 중이다. 왕씨는 국내에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는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왕씨는 95년 7월 두 차례 필로폰을 흡입한 혐의(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로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왕씨는 2014년 일반귀화를 신청했지만 법무부는 “국적법 상 ‘품행이 단정할 것’이라는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지난 1월 귀화 불허가 결정을 내렸다. 21년 전 필로폰 흡입 전력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무부의 처분이 지나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왕씨에 귀화허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달성하려는 건전한 국가공동체 유지라는 공익은 추상적인 반면, 평생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왕씨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은 현실적”이라며 “귀화 불허는 공익과 사익의 형량을 그르쳐 재량권을 일탈 또는 남용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품행이 단정할 것’이라는 요건은 귀화신청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왕씨는 20년 남짓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고 불법체류를 하거나 세금을 체납한 사실도 없다”며 “과거의 범죄경력은 원고가 개선할 수 없는 부분인데 이를 두고 평생 귀화허가를 받을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설명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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