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 고3 여학생의 판타지메이크업 모델 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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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송아, 있지… ‘알바’하지 않을래?”
“응? 무슨 알바?”
“내가 메이크업 대회 나가는데 모델 좀 해줄 수 있어?”

이렇게, 미용에 문외한인 저는 지난달 18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미용올림픽기능경기대회(IBO)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남들은 기말고사가 코앞이라고 속도를 올리던 그때, 학교가 있는 고창을 벗어나 친구와 함께 부산에 가게 됐죠.

IBO는 올해로 9회째인 국제미용대회입니다. 중국·대만·마카오·홍콩 등 10개국 선수들과 각국 협회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큰 대회이지요. 경상도 지역에서 열리는 유일한 토털 미용대회이기도 합니다.

고등부·대학부·일반부·국제부로 참가한 선수들이 헤어·네일·메이크업·속눈썹 등 31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루는 이번 대회에서 제 친구 박수림(고창여고3) 학생은 고등부 ‘판타지메이크업’ 종목에 나갔습니다. 따라서 모델인 저는 판타지메이크업을 받아야 했죠.

메이크업 대회에 메이크업만 연습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에요. 특히 판타지메이크업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메이크업을 직접 창작해야 하기 때문에 기획력이 많이 요구됩니다. 대회 전에 헤어와 의상을 준비하고, 오브제(Objet)도 만들어야 합니다.

밤을 새가며 한 달 넘게 준비한 이번 메이크업 주제는 ‘공작’. 친구는 이마엔 공작의 측면 모습을, 볼부터 어깨까지는 꼬리를 표현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기엔 ‘저러다 쓰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하더군요. 오브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대회 전날 다시 만드는 창작열을 보였습니다. 오브제 깃털 재료값으로만 10만원을 썼죠.

대회당일

대회 당일 새벽 1시에 학원으로 모였습니다. 헤어세팅과 의상을 착용하고 출발해 대회가 열리는 벡스코에 도착하니 아침 7시. 예상보다 참가자가 많아 주눅이 들었죠.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손을 맞잡고 기도한 후 대회장에 들어섰습니다.

큰 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야 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당연히 힘들겠지만, 사실 모델도 무척 힘듭니다. 메이크업 베이스를 시체얼굴색이 되도록 하얗게 바르고, 파운데이션도 긁으면 벗겨질 정도로 발랐으니까요. 거기에 페이스페인팅과 ‘반짝이 풀’까지…. 나중에 화장을 지우니 빨갛게 달아올랐더군요. 그래도 두꺼운 메이크업으로 새로운 모습이 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처음엔 ‘아바타’가 된 느낌도 있었지만, 곧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뻔뻔함도 생겼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요.

메이크업을 피부로 받아내는 사투가 끝난 후 심사와 워킹이 있었습니다. 사실 워킹 때에는 너무 긴장해서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처음 신은 힐도 너무 어색했고요. 오브제를 메고 있는 것도 따갑고 무거운데, 약 1시간30분 동안 허리를 꼿꼿이 펴고 미소를 지어야 했죠.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놀라웠어요. 어떻게 이런 다양한 메이크업들을 고안해 내는지 신기하더라고요. 다른 모델들 사이에서 ‘작품’의 하나가 되어 서서 ‘역시 메이크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뛰어난 실력을 가까이에서 보고, 참가자들의 열정을 바로 곁에서 경험해 보니 세계적인 ‘K-뷰티’라는 말이 실감이 났어요.

다들 잘한 것 같았지만, 대회니까 성적이 나왔겠죠? 우리 팀은 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간 고생한 친구의 모습이 생각나서 상을 받을 땐 눈물이 날 뻔했어요. 고3이라고 모두가 똑같은 모습으로 노력을 하는 건 아니에요. 또 다른 꿈을 꾸며 노력하는 고3들도 있답니다. 이 친구처럼, 또 여기에 참가한 다른 아티스트들처럼 말이죠.

글·사진=이은송(고창여고 3) TONG청소년기자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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