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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중남미…그 성공과 좌절에서 배운다|「2000불시대」는 가파른 발전의 고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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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역사란 그 속에서 교훈을 찾아 자기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는데서 진정한 가치를 발한다. 힘들게 올라선 1인당 국민소득 2천달러의 능선에서 독재와 삼바리듬속에 굴러 떨어진 나라가 있는가 하면 타고난 근검과 정치적 안정등에 힘입어 이제는 1만달러시대를 구가하는 나라도 있다. 바로 그 갈림길에 서서 중남미와 일본으로 각각 대표되는 좌절과 성공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선진조국의 청사진은 빛 바랜 사진으로나 남게될 것이다.

<천%의 악성인플레>
1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선진국 대열을 넘보고 70년대초까지도 남미제1의 부국으로 손꼽히던 아르헨티나는 7년반의 군부독재가 깡그리 망쳐놓았다.
지난76년 군사쿠데타로 들어선 군사독재정권은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패배로 83년 민간정부에 정권을 넘기기까지 7년반동안 아르헨티나에 연율 1천%의 악성인플레와 세계3위인 4백57억달러의 외채, 공식적으로만도 8천9백60명의 행방불명자라는 유산만을 남겨놓았다.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비옥한 국토, 세계 3위의 쇠고기 생산국, 풍부한 양모와 밀 생산, 수출까지는 안돼도 거의 자급이 가능한 에너지 자원, 문맹율 5%의 높은 교육수준.
어느것 하나 모자라지 않는 아르헨티나를 망쳐 버린것은 정치의 추행이었다.
2차대전후 들어선 「이사벨·페론」정권은 아르헨티나의 전통적 자유기업주의에서 벗어나 경제분야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늘려 나갔고 지지기반이던 노동자들에 대한 인기전술은 경제기반이던 농민들을 연간 1백57일의 휴일을 즐기는 노동귀족으로 바꿔버렸다.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군부가 일어섰다.
이후 83년12월 현재의 「알폰신」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아르헨티나는 9번의 군사쿠데타를 겪어야 했다.

<시카고학파의 오산>
갈피를 잡을수 없는 정국의 혼돈속에서 경제는 버틸 힘을 잃었고 「페론」의 무능한 민정을 무너뜨린 「비델라」의 76년 쿠데타는 이후 「알폰신」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공포의 정보정치를 펼치면서 경제를 완전히 파탄지경에 몰아 넣었다.
3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반정부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그런 이유조차 없이 살해됐으며 이같은 「추악한 전쟁」을 위한 막대한 정권유지비용은 무분별한 외채도입으로 연결돼 나라살림을 결딴냈고 결국은 군부독재자 자신이 종신형을 선고받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그 사이 민생은 어떻게 됐는가. 70년 이후 15년동안 물가는 10억배가 오르고 1인당 GNP는 l5%가 떨어지는 참담한 결과로 나타났다.
81년 1백만페소짜리 지폐가 나와 어떤 식당은 돈으로 벽을 바른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나왔다.
좌절의 또 하나의 예를 칠레에서 본다.
「자유화」를 만병통치약처럼 내건 시카고학파의 정책입안자들이 실시한 경제이론의 거대한 임상실험은 그런대로 쓸만하던 몸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얼른 생각하기에 칠레가 우리보다 빈국으로 보이는데 실상 우리가 77년에야 1인당 국민소득 1천달러를 달성한데 비해 칠레는 71년에 이미 이룩했었다.
물론 지금은 역전됐지만 칠레는 세계 제1의 동광을 비롯한 천연자원과 풍부한 임·수산물을 가진 천혜의 나라였다.
시카고학파의 경제실험이 시작된 것은 지난 73년.
「아옌데」좌익정권을 군사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집권한 우익 「피노체트」정권은 누구나처럼 민생해결을 위한 경제재건을 1차목표로 내걸었다.
당시 칠레경제는「아옌데」정권의 국유화정책과 통제경제로 생산감퇴·물가상승 등의 난국을 맞고 있었다.
이때 난국수습에 나선 「피노체트」정권의 눈에 뛴 것이 시카고대 출신의 이론가들인 이른바 시카고학파들.

<시리를 놓친 대가>
일단 실험삼아 시행해본 택시허가제의 폐지가 큰 효과를 얻으면서 자신감을 갖게 된 「피노체트」정부는 시카고학파를 대거 경제각료로 등장시키고 「프리드먼」교수를 직접 초빙까지 해가며 자유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외자도입이 자유화됐고 수입관세는 일부를 빼고 10%로 일률 적용시켰으며 환율과 은행이자·공공요금 등이 일제히 자유화됐다.
일거에 경제구조를 바꾸려는「피노체트」와 시카고학파의 야심에 찬 개방정책은 적어도 70년대말부터 3∼4년간은 결정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아옌데」정부때 공식발표로 6백%에 달했던 인플레가 81년에는 9·5%라는 기적적(?)인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경제는 7∼8%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것이 고비였다. 81년 1인당 국민소득 2천7백84달러를 정점으로 칠레경제는 파탄의 길로 접어 들었다. 82년 한해 마이너스 14·3%라는 유례없는 부의 성장과 함께 칠레는 다시 2천달러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급격한 자유개방정책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돈은 안들어오는데 신나게 끌어다 쓴 외채는 때마침 불어닥친 미국의 고금리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약이 좋다고 아무에게나 좋은 건 아니다. 나라마다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사회적 관습이 같지 않다. 이를 무시한 생소한 이론의 무분별한 도입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성공의 사례를 우리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2차대전의 폐허속에서 일본이 어떻게 소생해 이제 GNP세계2위, 1인당GNP 1만달러의 경제대국을 건설했는가는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71년 1인당GNP 2천달러(현재의 2천달러와는 의미가 자못 다르지만)를 돌파한 이래 일본은 두차례의 오일쇼크를 성공적으로 극복해내면서 선진의 대열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정치적인 안정, 높은 기술수준, 풍부하고 숙련된 노동력, 높은 저축률, 종신고용제를 바탕으로 하는 원활한 노사관계가 좁은 국토와 빈약한 자원을 극복하는 바탕이 됐다.
외부적인 조건에서도 일본은 역사적으로 시리를 잘 타온 나라다.

<연평균 10·5% 성장>
아시아 각국중 가장 빨리 문호개방정책을 취함으로써 제국주의시대의 일원이 됐고 당시의 경제적 약탈과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얻어진 기술적 축적은 2차대전의 패전후에도 일본을 소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됐다.
2차대전후 폐허를 청산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한국전쟁.
겨우 기아상태에서 벗어나 미국의 경제원조로 버티던 일본은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이른바 한국특수를 맞게 된다.
소모전이 한창이던 52년 일본의 총수출은 13억달러인데 이중 한국특수가 8억2천4백만달러에 달했다.
외화수입만이 아니라 군용지프수리에서 자동차공업이 일어나며 철조망·드럼에서 철강산업이 소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원조의 그늘에서 벗어나 도약을 시작했다.
55년이후 70년대까지 일본은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이른바 「3종의 신기」로 불린 TV·세탁기·냉장고의 대량보급이 시작되며 주거난 해소를 위한 고층주택단지 건설이 줄을 이었다.
선진국 재진입과정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지전의 소득배증계획. 국민개개인의 소득을 60년부터 70년까지 10년새 2배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연평균 10·5%라는 고도성장을 통해 목표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 기간중 열린 64년 동경올림픽은 일본이 선진국에 다시 끼었음을 선언하는 행사였다.
이해 일본은 IMF 8조국이 돼 외환자유화가 실시되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일원으로 가입하며 신간선이 영업운전을 시작했다.

<「일본주식회사」의 번영>
수입자유화 물결속에서도 일본은 국민들의 검약과 절제, 「모방의 천재」라는 말속에서 하나하나 쌓아올린 기술개발력으로 외파를 견뎌나가면서 체질을 강화했다.
60년대의 세계적인 호황, 자유무역주의의 고창등 지금과 비하면 행복한 시절속에 일본은 수출대국으로 자랐다.
전후 원조와 외채도입으로 경제재건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쓰던 일본은 60대후반부터 경상수지흑자로 정착, 68년 드디어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시리만으로 성공의 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시리는 자체역량로 소화해야 한다.
중남미의 실패도 시리를 타고 못타고가 아닌 장기독재·부패·무모한 정책실험 등 내부에 패인이 었었다.
일본의 정치적 안정은 중남미와 극히 대조적이다.
자민당에 의해 장기집권 된다는 점에서 일견 멕시코와도 비슷해 뵈지만 일본자민당의 장기집권은 국민의 합의와 예측가능한 정치적 타협에 의해 이뤄져왔다는 점에서 하늘과 땅차이다.
이른바 일본주식회사라고 불릴만큼 긴밀한 관민협력은 국민의 합의로 인해 이뤄진 정부에 대한 당연한 신뢰의 바탕에서 꽃피워진 것이다.
근검절약의 국민성도 따지고 보면 같은 바탕에서 가능하다. 불안한 정국이 재산의 해외도피를 불러오는 반면 안정된 정국에서야 미래에 예측할 수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하게 된다.
일본의 국민저축률은 30%를 훨씬 웃돌아 온데 비해 칠레는 한자리수, 아르헨티나·브라질 등이 13∼15%에 불과하다.
일본과 중남미가 2천달러의 벽에서 겪었던 경험을 우리는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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