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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구도」가 떠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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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는 어느 분야보다 더 많은 미결의 문제를 안고 새해를 맞았다. 지난 1년을 끌어 온 헌법문제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예산 파동의 상처도 아직 다 씻지 못하고 있다. 남북한 관계도 성급한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진전이 없는 형편이며 주변 정세는 우리의 지혜로운 대응을 더 크게 요구하고 있다. 새해의 정치 전개가 어떤 모습이 될지 정치부 기자의 방담으로 짚어본다.
-새해는 88년의 정권 교체를 실질적으로 1년여 앞둔 분수령 적인 해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만큼 새해 국내 정치는 88년 문제가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느냐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과정이 되리라고 보입니다.
-여야 모두가 올해를 결전의 해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새해 정치 역시 개헌 문제를 축으로 해서 여야관계가 정립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여권의 후계자 문제가 가시화 되리라는 전망입니다. 정권교체문제·개헌문제·후계자문제는 갈래는 셋이지만 실은 서로 맞물려 있는 셈입니다.
-여권으로서도 이런 문제에 관한 대응을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점에 왔다고 봐야죠. 여당으로서 카드가 있다면 내놔야하겠죠.
-아마 정초에 개각과 그 후속조처로 당직 개편을 통해 여권의 구상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지 않나 예상됩니다. 내년에는 공식으로 대통령 후보자를 지명하기로 일정이 짜여진 만큼 집권 후반기 체제의 본격적인 구축을 고려치 않을 수 없는 상황이지요.
-개각에 관해서는 작년 말부터 여러 가지 설이 무성했습니다만 폭이 클 것이란 추측이 지배적입니다.
-이번 개각에 대한 관심은 내년에 공식 선정 될 「후계자」의 힌트가 나올 것이냐 하는 점이죠.
그런 점에서 총리 자리·당 대표위원자리가 움직이느냐가 가장 관심입니다.
-그러나 후계자를 시사하는 인사 개편을 단행하면 이른바 「통치권의 누수」 현상을 일으킨다는 우려도 있어요. 따라서 대폭 개편이 있더라도 이 시점에서 후계자를 시사하는 인사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번 개각에는 우선 새해 경제운용의 기조가 바뀌는 게 확실한 만큼 경제 팀의 일신이 예상되고 비 경제분야에서도 개각 요인이 상당히 누적되어 있기 때문에 「여권 쇄신론」이 아니더라도 개각 폭은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개각에 민정당 소속 의원들의 참여 폭도 한 관심사입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정치 체제 구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88년의 권력승계 체제와 관련, 당이 우위에서는 체제의 시험 운영적 성격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내각에 다수 의원이 입각하면 자연히 현행 체제로도 국정의 내각 책임제적 운영을 시험해 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관측이군요. 당직 개편의 시기도 개각 동시설과 2, 3월로 예상되는 야권 개편에 맞춘다는 설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노태우 대표위원 체제의 골격유지냐, 집권 후반기 구상과 관련해 새로운 면모를 보일 것이냐 인데 현재로서는 노 체제 골조유지를 전제로 한 대폭 개편설이 유력하더군요.
-개각과 당직개편은 결국 집권 후반기의 정치 일정을 어떻게 구상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속단은 금물입니다. 그렇지만 여권으로서는 내년 10월께부터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가 가능하고 또 대통령 선거 3∼10개월 전까지는 후보자를 뽑아야하는 현실적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금년에는 적어도 후보자에 대한 가시적 전망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그게 고민인 셈입니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 직전에 가서 평지돌출로 미지의 인물을 내세워 야당 후보자와 대항시킨다는 것은 여권 자체에서도 문제라고 인식합니다. 따라서 새 인물을 구상한다면 실제로 금년부터 부각시켜 이미지 메이킹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강하지요.
-그래요. 후계자의 평지돌출은 곤란하겠지요. 후계자의 유력한 대상은 적어도 총리나 대표위원 정도의 경력을 갖고 국민적 이미지를 갖춰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정부·여당의 개편이 관심의 적이 되는 게 아닙니까. 그러나 이 문제는 또 개헌문제 향방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헌법문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지난해 결국 명칭 하나 때문에 국회에 헌법 연구특위 설치가 실현되지 못했지만 금년에는 이름이야 어떻든 2, 3월 임시국회에서 「헌법특위」가 설치되고 그 특위를 중심으로 본격 논의가 시작되지 않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국회의 헌특이 개헌논의를 어느 정도 장내로 수렴할 수 있을는지가 올해 개헌논의의 관건이 될 것 같아요. 원내에서 지지부진하면 야당 측은 장외 1천만명 서명운동으로 나서려 할 테고 그렇게 되면 정부·여당은 강경 대응하고 해서 걷잡을 수 없이 에스컬레이트 될지도 모르거든요.
-개헌문제는 어차피 여야간 협상대상이고 협상의 요처는 시기와. 내용인데 민정당은 그 시기에 대해 88년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완강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거예요.
-그래요. 지난 정기국회의 운영위에서 개헌특위 구성을 싸고 여야가 논전을 벌였을 때 민정당 측은 현행 헌법이 진선진미한 것은 아니므로 상황이 바뀌면 고칠 수도 있으나 88년에 한번이라도 현행 헌법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해보고 난 뒤 논의하자고 했지요. 말하자면 「88년 임기 말까지 호헌, 그후 개헌논의 가」라는 여권 카드가 제시된 셈입니다.
-아무튼 정당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계기를 잡아 정치일정을 당 공약으로 내놓을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방안이 야당과의 협상에서 타결된다면 평화적 정권 교체와 당 우위의 권력구조 체제 구성방안이 동시에 충족된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것은 여당 논리이고 야당은 다릅니다. 야당은 현 대통령 임기 전에 국민이 정부 선택권을 갖는 개헌을 해야하며 그것을 보장하는 정치 일정을 금년 3, 4월께 까지는 밝히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은 야당의 겉으로 드러난 공식입장이고 개헌에 관한 당론이 야당 안에 통일돼 있는 것은 아니죠.
-야당이 단일안을 낼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김대중씨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고집하고 있지만 김영삼씨는 그 보다는 신축성을 보여 내각 책임제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민우 총재 역시 직선제를 강조하지만 개헌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협상할 수 있다는 자세로 보입니다.
-그러나 두 김씨 모두 개헌시기에 관해서는 88년 이전을 완강히 주장하고 있잖아요.
-결국 여야는 「88년을 넘기는 방식」을 서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한 환경조성을 놓고 힘 겨루기를 하는 상황이 당분간 더 계속되겠죠.
-여권은 야권이 단일안을 갖고 협상에 임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김대중씨 측을 배제한 가운데 김영삼씨 측과 정치 본질문제를 협상하는 과정도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여권이 김대중씨의 장내 진입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므로 김영삼씨가 신민당에 입당한다면 그럴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그럴 경우 두 김씨는 갈라 설 가능성이 크고 정계의 개헌 논의와 상관없이 흐르는 이른바 민중헌법 제정 흐름에 김대중씨가 합류할 위험성도 있으므로 김대중씨 배제의 협상 전개 가능성은 현실적 제약이 있게 마련입니다.
-김씨가 입당하면 김대중씨와 관계가 소원해져 동교동 측이 비주류 화할 가능성이 있는 등 복잡한 양상이 전개될 것입니다.
-또 지난 31일 신보수회 등 12명의 탈당으로 야권 개편은 이미 시작됐어요. 이로써 신민당의 원내 3분의 1선 확보가 무너져 여야 관계와 국회 운영패턴이 달라지게 됐죠.
-신민당 측은 즉각 공작 정치의 산물이라고 비난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여당의 다당제적 정국운영 구도와 맞아떨어지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신민당이 떨어져 나간 숫자만큼 전력이 약화됐다는 산술적 평가도 하긴 어려워요.
-그렇죠. 12명이 나갔지만 정국은 여전히 민정·신민당이 중심이 되고 국민당과 탈당 파는 종속 변수밖에 안될 겁니다.
-그러나 민정당은 그만큼 편해지고 신민당은 앞뒤로 공격받는 형국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정치인이 가두로 나가고 학원 사태가 가라앉지 않고 거기다 실업자 문제가 겹치는 등 상황이 악화된다면 상상외의 국면이 조성 될 우려도 있습니다.
-야당 측은 그러니까 여당 측이 빨리 성의를 보이라는 얘기라는 겁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지난 정기국회도 무난히 넘겼고 「운동권」에 대해서도 이제 뿌리까지 손대는 단계에 갔다면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요. 야당이 장외로 나오면 법대로 집행할 뿐이라는 자세입니다.
-여권은 또 실제로 야당의 내부 상황을 보거나 현재의 우리 사회 분위기로 보아 1천만서명 운동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보는 것 같아요.
-여야 의원간에는 금년에 어떤 변혁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많은 실정입니다. 이른바 4월 위기설 등인데 4월 12일부터는 국회해산이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요.
-국회를 해산하면 해산 후 30∼60일 사이에 재선거를 해야하는데 재선거에서 여당이 반드시 유리할 것이냐, 대내외 특히 금년의 중요 시정목표인 아시안 게임의 성공적 개최 등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거예요.
-모르지요. 정치권과 별도로 움직이는 재야 세력이 극렬해질 경우 극적 효과를 노리는 비상 처방이 동원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여튼 의원들, 특히 다수 야당 의원들이 국회 해산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또 한번 솎아내는 작업이 벌어지고, 그럴 경우 자신이 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입니다.
-개헌 여부의 타당성을 묻는 국민 투표가 실시되리라는 막연한 소문도 있어요.
-올해 정국의 큰 변화는 오히려 남북 관계의 진전 여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죠. 가령 금년에 남북 최고 당국자 회담이 열린다면 현재의 헌법 문제 같은 것은 오히려 작은 문제가 되겠죠. 그러나 남북한 관계에 어떤 극적인 진전이 가능하긴 할까요.
-지난 해 해방 40주년을 계기로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이 이루어졌고 우리측의 성실하고 꾸준한 접근 자세로 돌파구의 가능성이 지난해 하반기에 설왕설래됐으나 현재로서는 당분간 힘들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유력합니다.
-그러나 미소간의 제2 데탕트 기운을 포함해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소 4강간의 관계 개선 움직임이 현저해져 이것이 남북한 정세에 어떻게 투영 될 지에 따라 의외의 사태가 올는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측이 끈질기게 추구해온 최고 당국자 회담이 열린다면 국민이 기대하는 만큼의 가시적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런 성과를 가져올 만큼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최소한 상호 불가침 협정이라도 맺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과 주한 미군문제는 별개로 할 수밖에 없고, 북측은 주한 미군철수를 전제로 한 휴전협정 대체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불가라든가….
-한 고위 소식통은 우리가 손해보는 대화는 할 수 없는 게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적십자 회담·경제회담·체육회담 등은 그런 대로 활발한 전개를 통해 부분적 진전은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합니다.
-경제·통상의 대외 여건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개방 압력과 무역 마찰·경제타개 등을 위해 최선의 대처를 가능케 할 국내 정치의 안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금년에는 지방 자치제 법안도 성안해야 하므로 이에 대한 여야간 인식 차를 어떻게 좁힐 지 난제가 하나 둘이 아니지요.
-올해야말로 88년 대사를 앞두고 참으로 다사다난하겠다는 예상입니다. 우리도 열심히 뛰겠다는 각오를 더욱 가다듬어야겠습니다.

<참석 자>
송진혁 정치부장
고흥길 차창
한남규 ˝
전 육 ˝
김영배 ˝
이수근 기자
김현일 ˝
허남진 ˝
박보균 ˝
안희창 ˝
이재학 ˝
기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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