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연휴 반납한 「미조섬유」여공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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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신정연휴를 수출전선에 반납했다.
서울역촌동25 편물의류제조업체 미조섬유 공업사(대표 박효웅·46).
드르르,드르르,들들들들들….
1백50평 지상1층 콘크리트건물의 작업장안. 30여대 재봉틀이 내는 매끄러운 기계음과 60여 종업원들의 날렵한 손놀림이 한데 어우러져 삼매경.
한겹 유리창 밖의 잔 바람도, 흩날리는 눈발의 수런거림도 방안의 조용한 열기엔 간곳이 없다.
작업대마다 수북이 쌓인 스웨터의 옷깃·등판·소매들이 재봉틀을 거치며 한데 이어져 30분이면 완전한 옷이 돼 쏟아진다. 한쪽에선 다된 스웨터마다 수출지역 외국백화점 상표를 붙여 다림질을 해 차곡차곡 상자에 넣고 포장을 해 컨테이너에 싣고있다.
한벌에 12달러의 외화가 쌓이는 현장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일감이 없어 종업원들을 3분의2가량은 집에서 쉬게 했는데 올해는 9월부터 예년에 없던 주문이 밀려들어 생산라인을 전가동하고 있읍니다. 현재 하고있는 것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90만달러어치 스웨터. 재킷인데 2월말까지 선적을 해야돼요. 종업원들과 상의, 신정에 일을하고 구정까지 일을 모두 끝낸 뒤 함께 쉬기로 했지요』
사장 박씨의 즐거운 설명. 박씨는 일본의 엔화 강세가 우리상품 수출에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고 했다.『예상하지 않았던 수출경기 덕분에 겨울에도 놀지않고 일을 할 수 있게돼 모두들 기뻐하고 있어요. 그래도 신정연휴는 쉴 줄 알았는데 사장님 말씀을 듣고 일부터하고 구정에 신정 몫까지 함께 놀기로 했지요』미싱공 송선덕양(22) 은자신이 만든 옷이「메이드 인코리아」상표를 달고 나가 외국손님들에게 한국의 기술과 신용을 심어주게될 것을 생각하면 월급을 더 받는 다는것 이상의 보람과 자랑을 느낀다고 했다.
이 회사서 4년째 일하고 있는 송양의 한달 봉급은 26만원.
사강 박씨는 구정에는 4일간의 휴가와 1백% 보너스를 약속했다.
올해 이 회사의 수출실적은 2백50만달러. 여종업원들의 가냘픈 손으로 한사람당 4만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한벌 12달러에 수출되는 스웨터는 일본의 백화점에 가면 50달러 가격표가 붙는다. 종업원들은 경력과 기술에 따라 16만∼30만원의 비교적 높은 월급을 받고있다.
이 회사가 창립되기는 74년. 군에서 제대한 뒤 안양모방에 들어가 스웨터부 공장장으로 3년간 일하면서 편물의류 전문가가 된 사장 박씨가 2백50만원으로 현재의 공장을 인수,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일거리가 없어 고전하기도 했으나 「품질」로 신용을 쌓아 요즘은 외국 바이어들이 종합상사를 통해 계약을 하면서 생산공장을 미조섬유로 지정할 정도.
『지금까지 단 한번의 노사분규도 없었읍니다. 모든 회사일을 종업원들과 함께 상의해서 해오고 있기때문에 종업원들이 「자기일」로 일을하고 그래서 서로 다툴일도 없고 불량품도 없는 회사가 될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장 박씨가 말하는 「품질과 신용의 미조」 원동력.
박씨는 집이 시골인 종업원들에게는 자취방을 얻어주고 냉장고·컬러TV도 회사에서 구입해주었다.
종업원중 가장 나이가 어린 미싱공 전영화양(l7)은 사장 박씨의 배려로 야간중학교에 다니고있다.
이같은 노사간의 화목은 품질 향상으로 나타났다.
수출창구로 계약을 맺고있는 S물산에서 매달 시행하는 40여개 하청공장 품질검사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지금 만들고 있는 옷은 모두 봄 의류입니다. 여름의류 주문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고 있읍니다』
상오 8시부터 하오7시까지 11시간 가동을 하고있는 미조섬유종업원들에겐 신정연휴의 설렘도, 귀향을 못하는 아쉬움도 미처 느껴볼 시간이 없을 만큼 당장의 일감이 기쁘고 바쁘다.
그러나 일부종업원들은 시골 부모님들에게 연하장을 띄우거나 소포로 선물을 보내 신정 세배를 대신하기도 했다.
충북 청원군 북일면이 고향인 미싱공 김순자양(22)은 신정귀성이 취소되자 시골부모님에게 겨울 내복을 보냈다.
『누구보다 더 뜻깊고 보람있게 연말연시를 보낸다고 생각해요. 새해엔 더욱 수출경기가 활발해져서 나도, 우리회사도, 나라도 커졌으면 좋겠어요.』 밝은 얼굴에 미소가 활짝.

<도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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