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나는 황야에서 죽을 것이다” 말하는 남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기사 이미지

김형경
소설가

그는 노년의 아버지를 목욕탕에 모시고 가 등을 밀어 드렸다고 말했다. 처음 보는 아버지 몸은 거짓말처럼 작아서 성장기에 두려워했던 그 사람이 맞는가 싶었다. 목욕 후 냉면을 사 드리고 당신의 단칸방에 모셔다 드렸다. 수십 년을 다른 여자와 살고, 거기서 태어난 자식도 있는데 늙고 병들어 본처를 찾는 남편을 그의 어머니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는 아버지가 홀로 죽음을 맞게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마침 르포 한 편을 보았다. ‘남자, 혼자 죽다; 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이라는 제목이었다. 서울에서만 한 해 평균 280명가량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한다. 언론인을 꿈꾸는 대학생 여섯 명이 그들 중 83명을 간추려 조사했는데 남자가 77명, 여자가 6명이었다. 그들 중 다시 7명의 남자를 선정해 생전의 삶을 추적 취재했다. 그러면서 의문을 품었다. 남자는 왜 혼자 죽는가. 공동 저자 중 한 명이 메일을 보내와 질문을 내게 건넸다.

기사 이미지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대 위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유전적 환경, 부모 환경을 검토해야 한다. 3대의 개인사, 가족사뿐 아니라 사회사까지 검토해야 한 사람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문장으로 정의할 만한 문제도 아니었다. 르포를 읽으며 유추할 수 있는 요인 하나는 그들이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이들이 아닐까 싶었다. 성장기에 양육자와 건강한 애착관계를 맺지 못하면 삶의 에너지를 얻을 수 없고 자기애나 자존감을 갖지 못한다. 온전한 현실 검증력과 건강한 생존법을 배우지 못해 성인이 된 후 열심히 살수록 결과가 나빠지는 삶이 지속된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기 때문에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도 몰라 가장 가까운 사람을 떠나도록 만든다.

진화심리학적 요인도 있을 것이다. 남자의 내면에는 해가 뜨면 집 밖으로 나가 사냥하거나 경쟁해온 유전자가 수천 년 동안 형성돼 왔다. 오늘날에도 남자는 일터든 공원이든 커피전문점이든 낮 동안 집 밖에 머무르려 한다. 그곳에서 장기를 두거나 논쟁하면서 “나는 황야에서 죽을 것이다”고 외치는 유전자 속 야생성을 다스린다. 일터를 잃거나 가장 역할을 상실한 후 산속에 들어가 나 홀로 수렵시대를 사는 남자들도 텔레비전에 자주 소개된다.

죽음의 순간뿐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도 남자는 대체로 혼자라고 느낀다. 모든 타인을 경쟁자로 여기는 유전자 속 본능의 속삭임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