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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훈련장을 탈북민촌으로…국내 첫 난민 건축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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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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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은 국내에도 있다. 건축가들이 그들의 삶터를 관찰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사진 김용관 건축사진가]

‘인종·종교·국적 또는 정치적 견해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이를 원하지 않는 자’ 난민은 최근 글로벌 건축계의 주요 키워드다. 난민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 건축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건축가의 사회 참여가 주목받는 요즘 국내에도 난민과 노숙자를 주제로 한 첫 건축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뉴 쉘터스(New Shelters): 난민을 위한 건축적 제안들’과 ‘홈리스의 도시’전이다.

아르코미술관 ‘뉴 쉘터스…’
빅데이터 활용해 커뮤니티에 연결
난민들에겐 맞춤형 삶터 제안도

뉴 쉘터스 전을 기획한 정림건축문화재단의 박성태 상임이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누적난민신청자가 1만5000명, 심사를 거쳐 난민 자격을 받은 이는 580명에 불과하다”며 “건축가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팀을 짜서 국내 난민 문제를 진단하고, 그들을 위한 해법을 찾아봤다”고 설명했다.

건축가 김찬중씨는 빅데이터 전문가와 팀을 짜 모바일 빅데이터를 활용해 난민들에게 맞춤형 삶터를 찾아주자고 제안했다. 일명 ‘빅데이터 쉘터링(Big Data Sheltering)’이다.

그는 한국에 온 난민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이태원이라는 데 주목했다.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의 쪽방촌에서 살며 정보를 얻고, 경기도 시흥·안산·의정부·동두천 등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게 국내 난민의 이주 패턴이라는 분석이다. 김씨는 “난민 동의하에 통신기기를 주고 그가 검색하는 데이터를 분석해 원하는 커뮤니티를 찾아주자는 제안”이라며 “꼭 시설을 짓지 않아도 커뮤니티에 스며들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건축가 황두진씨는 유사시에 전국 250여 개의 예비군 훈련장을 ‘탈북난민 정착촌’으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는 비닐하우스에서 비싼 임대료를 내며 열악하게 살아가는 농어촌 이주민의 현장을 고발하고 이들을 위한 새 보금자리를 제안했다.

독립큐레이터 목홍균씨가 기획한 ‘홈리스의 도시’ 기획전에서는 ‘21세기형 난민’으로 대도시의 노숙자를 지목한다. 목 씨는 “미래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질문에 도시 전문가 대다수가 슬럼이 된다고 단언하고 있다”며 “전시를 통해 현재 모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기상천외한, 세계 곳곳의 빈민가가 상영된다.

남미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는 2014년 퇴거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초고층 빈민가’가 있었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45층짜리 짓다 만 건물로 ‘토레 다비드’라 불린다. 1997년 금융위기와 함께 건설이 중단됐고 집 없던 720가구가 무단으로 점유했다. 주민들은 폐허를 집으로 가꿔나갔다. 당번을 정해 공용 공간을 청소하며 농구장이나 헬스장도 만들며 삶터를 일궜다.

스위스 건축디자인그룹 어반싱크탱크는 이 카라카스 난민촌을 주제로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전시를 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중국 북경의 건물 지하벙커에서 살고 있는 농어촌 이주민과 “노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거리보다 잠자리”라고 강조하는 국내 노숙인의 강의 등 스크린 속 ‘21세기형 난민’의 모습이 생생하다. 전시는 8월 7일까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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