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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성주 배씨 ‘Mrs. Ye’를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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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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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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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뜻밖의 만남이었다. 120여 년 전으로 시계추를 돌렸다. 산 설고 물 설은 미국에서 당당하게 살아간 한 외교관 부인과 마주쳤다. 미국 잡지 ‘홈 매거진(Home Magazine)’ 1891년 5월호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한국 공사관의 Mrs. Ye는 멋진 파티를 열었는데, 유명한 사람들이 예의를 갖췄다. 해리슨 영부인(미국 23대 대통령 벤저민 해리슨의 부인)과 다른 각료 부인들이 비공식 초청을 받았다.’

‘Mrs. Ye’는 대한제국 주미 워싱턴공사관 서리공사를 지낸 이채연(재임 기간 1890~1893년)의 아내다. 미국 대통령 영부인과 가깝게 지낼 만큼 사교, 나아가 민간 외교에 적극적이었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이 강하게 남아 있었던 시대의 여성상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그를 다룬 미국 언론의 보도는 제법 많다. 뉴욕 데일리트리뷴은 1900년 2월 4일자에서 이렇게 전한다.

‘Mrs. Ye는 총명했고 사교적 열망이 컸다. 신세계의 자유를 빨아들였고 적응력이 놀라웠다. 영어 공부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코버넌트 교회(공사관 인근에 있던 교회)에 정기적으로 나갔다.’ 코버넌트 교회는 해리슨 대통령이 다녔던 장로교 교회다. 더선(The Sun)지는 1892년 10월 8일자에서 ‘Mrs. Ye는 교회 멤버가 됐다. 남편과 함께 해리슨 대통령 바로 뒷좌석에 앉았다. 다른 한국 외교관이 그를 따라 했다.’

Mrs. Ye에 관한 국내 기록은 거의 없다. 정확한 이름도 모른다. 성주(星州) 배씨로 워싱턴 초대공사였던 박정양의 번역관으로 미국에 갔던 이채연의 부인 정도로 알려졌다. 이채연은 1891년 1월 워싱턴공사관 매입 당시 책임자였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한종수 박사는 “배씨는 외교관 역할에 충실한 신여성이었다. 버지니아주 로어노크대에 다니며 한국 유학생도 유치했다. 그에 대한 본격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워싱턴공사관은 고종 황제가 펼쳤던 자주 외교의 상징이다. 중국 청나라의 간섭을 물리치고 주권 국가로서 미국과의 관계 구축을 도모했다. 당시 공사관의 활동을 보여주는 엽서·그림·결혼식 초대장이 최근 발굴돼 화제가 됐다. ‘성주 배씨’의 이름도 처음 조명됐다. 당시의 외교적 노력은 비록 일제에 의해 꺾였지만 그 가치마저 부인할 수 없을 터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로 더욱 꼬인 오늘의 한반도를 비추는 거울도 된다. 마침 경북 성주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결정됐다. 우리의 중심 잡기가 더욱 절실한 때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