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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중국도 와인 만들어라” 서태후가 은화 300만 냥 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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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스

남양(南洋) 중국인 중 최고 부자로 손꼽히며 ‘동양의 록펠러’로 불린 장비스(張弼士·1841~1916). 그가 1892년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에 자신의 성을 딴 ‘장위양주공사(張裕釀酒公司)’를 세울 때 목표는 분명했다. ‘가장 뛰어난 포도주를 생산해 나라를 빛내자’.

창립 124주년 중국 첫 포도주 회사 ‘장위’

장비스는 2차 아편전쟁 직후 혼란기인 1858년 17세 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했다. 그는 각국의 명주들을 수입해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 포도주와는 운명적으로 만났다. 1871년 자카르타의 프랑스 영사관이 개최한 파티에서 처음 마셔본 프랑스 포도주는 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파티에서 프랑스 영사는 중국 대륙의 옌타이에 가면 산 전체에 야생포도가 지천이고, 이 포도로 만든 포도주의 맛이 특별나다고 했다. 장비스는 이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었다.

부동산과 무역으로 부를 쌓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38개의 방과 220개의 창문이 딸린 집에 살았지만 장비스는 조국이 그리웠다. 기회가 왔다. 1891년 장비스는 옌타이에서 철도 건설에 관한 업무를 논의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프랑스 영사에게 들은 말을 잊지 않고 지역을 꼼꼼히 살폈다.

옌타이는 바다에 붙어 있는 데다 뒤에는 산이 있었다. 겨울에는 춥지 않았고, 여름엔 덥지 않았다. 프랑스의 대표적 포도 산지인 보르도 지역과 유사한 기후였다. 그는 이곳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운도 따랐다. 서태후는 “중국도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애국적인 실업가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은화 300만 냥(현재 가치 770억원)을 내렸다. 돈은 모았지만 와인을 만들어 본 사람이 없었다.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에서 양조기술자를 불러왔다. 거대한 지하 포도주 저장고를 설치했다. 묘목을 심은 지 4년이 지난 1896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서양식 ‘빈티지 와인(특정 연도에 만들어 숙성시킨 와인)’이 태어났다.

와인이 중국의 공식 연회에 사용된 것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연회에 쓰인 와인은 프랑스산이었다. 2000년 중국 국가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는 비싼 프랑스 와인 대신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찾기 위해 세계 유명 와인 11종의 품평회가 열렸다. 장위 와인이 전체 평가에서는 2위를, 가격 대비 맛과 향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2003년부터 국가 행사 때 장위 와인을 사용하고 있다.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택한 와인이 장위 브랜드였다.

한국에서는 장위그룹의 자회사인 얀코가 만드는 백주인 ‘연태고량주’가 더 유명하다. 장위의 2015년 품목별 수익을 살펴보면 78.70%가 와인에 집중돼 있다. 브랜디가 19%, 연태고량주 등 기타 품목은 2.3%에 불과하다. 2002년 초부터 한국 시장에 진출한 연태고량주는 현재 한국 수입 백주시장의 50%를 차지한다. 연태고량주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한국이다.

인천공항에서 옌타이는 비행기로 50분 거리. 지난달 25일 옌타이의 ‘장위와인박물관’에서 저우훙장(周洪江·52) 총경리를 만났다. 그는 선양 건축대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중국과학원 선양자동화연구소에서 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88년 장위와인에 입사했다. 94년 영업 담당자로 승진한 뒤 2001년부터 총경리로 장위와인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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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훙장 총경리가 중국 산둥성 옌타이의 장위와인박물관 내 쑨원의 친필 휘호 앞에서 회사 설립과 현재까지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옌타이=최승식 기자]

일본·미국·프랑스·독일 등 28개국에 수출한다고 들었다.
“최근 유럽 와인기업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직접 와인을 생산하거나 중국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영국 왕실에 와인을 공급하는 베리브로스앤드루드(BBR)는 2013년부터 장위와인을 영국의 유명 수퍼마켓인 ‘웨이트로즈’에 공급했다. 중국 와인이 영국 소매 업체 판매 리스트에 등록된 것은 장위가 최초였다.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까닭은.
“그동안 국내 위주로 활동했다. 장위 와인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20%가 넘는다. 지난해 국내 영업이익은 44억8160만 위안(약 7734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96.38%를 차지했다. 중국인의 한 해 레드와인 소비량은 18억6000만 병(750ml 기준)이다. 세계 최대 레드와인 소비국이다. 우리는 앞으로 해외 비중을 30%로 끌어올릴 것이다. 세계 우수 와이너리를 사고, 글로벌 와인 공급상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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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와인박물관에서만 판매하는 1937년산 제바이나(解百納). 제바이나는 이후에도 계속 생산해 지금까지 총 4억3000만 병을 팔았다.

경영철학은.
“100년 넘는 역사를 이끌어 가려면 끊임없이 품질 혁신을 해야 한다. 중국 국유기업 개혁을 거치며 민영화한 장위와인은 97년 선전B주에, 2000년 선전 A주에 상장했다. 근대적인 의미의 경영시스템을 구축했고, 품질 혁신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한다는데.
“조만간 소주와 비슷한 21도 연태고량주를 한국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30명이 넘는 한국 판매상을 만나 시음회를 열었다. 한국식으로 맥주를 섞는 폭탄주 등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봤다. 반응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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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위와인박물관 지하 7m에 위치한 1894년에 만든 술 저장실.

저우 총경리는 옌타이 외곽에 ‘와인 시티’를 건설하고 있다. 오크통 모양을 본뜬 건물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400만㎡ 땅에 포도농장과 와인 생산·유통시설, 와인 테마파크까지 들어선다. 공정이 기계화되면 매일 420만 병의 와인을 출고할 수 있다.

[S BOX] ‘품질 좋고 샘물처럼 감미롭다’ 쑨원이 기업에 써준 유일한 휘호

‘품중예천(品重醴泉·품질이 좋고 샘물처럼 감미롭다)’.

중국 산둥 성 옌타이 시에 위치한 장위와인박물관 서예실에는 쑨원(孫文)이 친필로 쓴 서예 작품 ‘품중예천’이 전시돼 있다. 저우훙장 총경리는 “쑨원이 기업에 써준 유일한 글자”라고 소개했다.

1912년 8월 20일 옌타이를 방문한 쑨원은 장위양주공사에 들러 포도주와 브랜디를 맛보았다. 맛에 감탄한 쑨원은 중국 최초의 포도주·브랜디 제조업체가 ‘국익의 발전을 위해 번창하기를 바란다’는 격려의 마음을 담아 휘호를 썼다.

100여 년 전 중국의 와인산업은 민족공업을 발전시켜 외환보유액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1892년 국유기업으로 탄생한 장위의 발전을 위해 역대 지도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장위와인은 1915년 파나마 국제박람회의 와인 품질대회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총리 시절 중국에서 개최되는 각종 국제회의에 장위와인을 내놓으며 각국 대표들에게 금상 수상 사실을 알렸다. 1914년 위안스카이(袁世凱)는 ‘영주옥례(瀛洲玉醴·신선이 사는 산의 옥처럼 귀한 단술)’라는 글을 썼고, 94년 장쩌민(江澤民)은 ‘푸른 물에 시의 맛 담으려 술로 빚으니 비로소 향기 풍기네(滄浪欲有詩味, ?釀才能芬芳)’라는 말을 남겼다.

옌타이=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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