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인용한 ‘창의적 쥐덫’…처음엔 잘 팔리다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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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근혜 대통령이 7일 대내외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더 좋은 쥐덫론’을 역설했다.

경제 위기 극복 사례 든 미국 회사
청와대 “결과 다 따져 한 말 아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연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대외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외 지향적인 개방정책을 선도하는 국가로 탈바꿈해 지금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 여건이 어려운 상황일수록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창조적 마인드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시장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것이 투자와 수출의 활로를 뚫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최고의 상품과 서비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추월하는 길이 있다”고도 했다.

쥐덫론은 이 같은 발언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박 대통령은 ‘당신이 더 좋은 책을 쓰고, 더 좋은 쥐덫을 만든다면 당신이 외딴 숲 속 한가운데 집을 짓고 산다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당신의 집 문 앞까지 반들반들하게 길을 다져 놓을 것’이라는 19세기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글귀를 소개했다. 그러곤 “여기서 쥐덫은 지금으로 말하면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울워스란 쥐덫 회사는 한번 걸린 쥐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면서 예쁜 모양의 위생적인 플라스틱 쥐덫으로 만들어 발전시켰다”며 “이런 정신은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는 바가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인용한 울워스의 쥐덫이었다. 디자인이나 위생 측면에선 뛰어난 제품이었지만 한 번 쓰고 버리긴 아깝고, 다시 쓰기엔 징그럽다는 생각 때문에 처음엔 잘 팔리다 결국 실패한 제품이 됐다. 그래서 ‘더 나은 쥐덫(a better mousetrap)’은 ‘더 나은 제품’을 의미하는 관용어로 쓰이지만 울워스의 실패 때문에 ‘좋은 제품을 만들면 무조건 팔린다’는 제품 중심적 사고를 꼬집는 표현으로도 사용한다.

인터넷상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청와대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창의적 발상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다 나온 비유”라고 말했다. 평소 연설문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직접 쓰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에서 나온 것으로, 최종 성공·실패까지 다 따져 언급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경 대변인은 “발언 의도와 맥락이 어찌 됐든 경영 실패의 대표적 사례를 공개 석상에서 발언했다는 건 신중하지 못한 것”이라며 “추후에는 자료 조사와 준비를 철저히 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호·이지상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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