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업계 “사실상 불허에 가까운 M&A 조건”…SKT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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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각 업체에 보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공정위가 M&A를 허용하는 대신 까다로운 인가 조건을 붙였을 가능성이 커서다.

인수 이후 점유율 50% 넘는 지역
SKT 방송사업권 매각 의무화 땐
새 가입자 415만명 중 400만명 잃어
CJ헬로비전 알뜰폰 포기 거론도
KT·LG유플러스 “조건 엄격해야”

유선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불허에 가까운 조건이 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허에 가까운 조건’으로는 특정 방송권역에서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으면 해당 지역의 사업권을 매각하는 내용이 유력하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7조 4항은 경쟁 제한성을 ▶시장점유율이 합계 50% 이상 ▶시장점유율 합계 1위 ▶2위 사업자와 점유율 격차가 1위 사업자 점유율의 25% 이상 등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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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서비스 중인 IPTV와 CJ헬로비전의 케이블방송 시장 점유율을 합하면 50%가 넘는 곳이 전국 23개 권역 가운데 20곳에 달한다. 사업권을 매각하면 그 지역의 가입자도 새로운 매수자에게 넘겨줘야 한다. CJ헬로비전 전체 가입자 수는 415만 명(2월 말 기준)으로 경쟁 제한 지역 가입자 수만 400만 명에 달한다. SK텔레콤으로선 인수합병을 하고서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없게 된다.

SKT 관계자는 “전달받은 보고서의 내용은 현재 극히 일부 담당자만 공유된 채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알려진 매각 조건이 사실이라면 사실상 불허에 가까운 가혹한 조치”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경쟁 제한성과 경쟁 제한을 해소하기 위한 시정조치만 내놓지 승인·불승인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려는 회사의 주식을 전량 매각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불허 의견을 낸 적도 있다. 2002년 12월 경남지역 소주 제조업체 무학이 부산지역 대선주조 지분 33.7%를 인수했는데 공정위는 ‘무학이 인수한 대선주조 지분 33.7%를 1년 내 전량 매각하라’는 조건을 붙였다. 그러나 이날 SKT에 전달된 보고서에는 주식 매각 같은 조치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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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사업권 매각’이라는 조건을 놓고 전혀 다른 해석도 나오고 있다. SKT는 사업권 매각이라는 공정위의 명령을 ‘매각 공고’를 내는 것으로 완료할 수 있다. 팔려고 매각 공고를 냈는데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못 팔았다는 식이다. 실제로 경쟁사인 KT나 LG유플러스도 SKT가 내놓는 매물을 인수할 수 없다. 인수하면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기 때문이다. 다른 유선방송 사업자가 인수자로 나설 수도 있지만 CJ헬로비전이 대부분 권역에서 유선방송 업계 1위이고 지역 유선방송 업계가 재정적으로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수자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보고서에 담긴 공정위의 뜻이 경쟁 제한이고 이를 강력히 억제하려는 조치가 들어 있는 이상 SKT가 인수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시정조치로는 CJ헬로비전의 알뜰폰(MVNO) 사업 포기가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이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합병하면 시장 독과점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CJ헬로비전의 알뜰폰 가입자는 지난 4월 말 기준 83만 명(점유율 13.2%)이다. 2위는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텔링크로 가입자 81만 명(점유율 12.9%)을 확보하고 있다. 합병이 성사되면 SK텔레콤은 알뜰폰 업계 1·2위 사업자를 동시에 보유하게 된다. 알뜰폰 가입자를 흡수해 이동통신시장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경쟁업체에서 이번 인수합병을 두고 “현금으로 가입자를 사가는 일”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밖에 5년간 요금 인상 금지, 이동전화가 포함된 결합상품을 사업자 누구나 동등하게 제공할 수 있는 동등결합 활성화도 시정조치에 포함될 수 있는 내용으로 언급되고 있다.

공정위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더라도 ‘불승인’만 아니면 인수 절차는 인수자가 의지만 갖는다면 추진할 수 있다. SKT와 CJ헬로비전 간에는 공정위가 불허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인수를 추진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까다로운 인가 조건은 SKT가 감당할 몫이라는 얘기다. 공정위가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이제 공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넘어갔다. KT와 LG유플러스 측은 “이동통신과 유료방송 1위 사업자끼리 결합은 독점을 심화시키기 때문에 승인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지만 조건부 승인이라면 조건이 엄격한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SKT, CJ헬로비전 인수 불투명

|공정위, 조건부 승인 보고서
점유율 초과 권역 사업권 매각
SKT “인수 자체 무의미해져”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간의 인수합병(M&A)이 불투명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일 심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SKT와 CJ헬로비전 측에 전달했다. SKT가 콘텐트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며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의 합병 허가를 신청한 지 7개월 만이다.

심사보고서 내용에 대해선 공정위 등은 모두 함구했다. 하지만 공정위와 두 회사에서 나오는 얘기를 종합한 결과 ‘불허 같은 조건부 인가’ 내용이 보고서에 담겼다. 합병을 승인하지만 CJ헬로비전을 인수하는 SKT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공정위의 조건은 ‘합병 후 유료방송 가입자 점유율이 일정 수치를 넘는 방송권역에서는 유선방송 사업권 매각’과 ‘CJ헬로비전의 알뜰폰 사업을 매각할 것’ 등이 유력하다. 이 경우 SKT는 전국 23개 CJ헬로비전 방송권역 가운데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선방송 사업권을 매각해야 된다.

SKT 관계자는 “점유율이 일정 수치를 넘는 방송 사업권을 매각하는 조건이라면 M&A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며 “사실상 공정위가 불허 의견을 낸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보고서 발송 2주 뒤 전원회의를 열어 최종 의견을 확정한다. 이 회의에선 M&A 당사자는 물론 합병을 반대하는 KT·LG유플러스 등 경쟁사 관계자들이 참석해 각자의 입장을 설명한다. 이 결론을 가지고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가 심사한 뒤 미래부 장관이 최종 인허가 결정을 한다. 두 회사 간 합병은 통신·유료방송 시장의 판도 변화는 물론 방송 등 콘텐트 산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어 그 결과에 큰 관심이 모아졌다.

박태희·조현숙 기자 adonis55@joongang.co.kr

공정위 이어 미래부·방통위 심사 남아

| SKT, CJ헬로비전 인수 남은 절차

공정위의 보고서 발송은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이 최종 합병 승인을 받기까지 넘어야 할 여러 개의 산 중 하나다. 우선 공정위 내부 절차도 더 남아 있다. 심사 보고서는 공정위의 최종 판단이 아니다. 결론은 공정위의 정재찬 위원장, 김학현 부위원장과 7명 상임위원이 참여하는 전원회의에서 판가름 난다. 이후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판단이 남아 있다. 미래부의 심사는 통신과 방송, 두 분야로 나뉜다.

통신 부문은 10명 안팎의 자문단이, 방송은 8~10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진행한다. 미래부 측은 “공정위 심사 기간 동안 자료를 충분히 검토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심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부의 심사가 끝나면 방통위가 바통을 넘겨받아 최대 35일 동안 사전동의 심사를 진행한다. 방통위는 이미 3월 전체회의를 열고 인수 건에 대한 기본 심사 계획과 심사단 구성 안을 세웠다. 특히 심사위원을 기존 7명에서 9명으로 늘려 방송서비스 공급원 다양성 확보 가능성 등 9개 항목을 집중 심사한다는 계획이다. 방통위가 사전동의 결정을 내리면 최양희 미래부 장관의 결재로 합병 인허가 작업이 최종 마무리된다. 최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기존 검토를 거쳤기 때문에 공정위 심사가 끝나면 미래부 절차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임미진 기자 newear@joongang.co.kr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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