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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학력고사장 주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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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입시전정」은 고사장 안팎이 열전 한마당이었다.
70여만 대입수험생들이 좁은 문을 뚫기 위해 고사장안에서 안간힘을 쓰는 동안 고사장 밖에서는 학부모·학교 선-후배·친지들까지 몰려나와 간절한 기도와 뜨거운 성원을 보내며 초조함을 못 이겨 서성거렸다.
해마다 초겨울 전국의 가정이 함께 앓는 입시 열병.
날씨는 구름이 끼어 흐렸으나 포근한 편이어서 고사장 안팎은 그래도 한시름을 놓는 표정들이었다.

<고사장주변>
○…서울동부지역 6개 여고 1천6백여명의 학생이 시험을 치르는 서울 청량리l동 청량중학교 고사장 교문 앞에는 『합격은 필수, 수석은 선택』『언니들을 대학으로 날려버려라』『합격 못하면 시집 못 가요』 등 각종 격문들이 요란스럽게 나붙어 수험생들을 격려.
○…고사장에 나온 후배재학생들은 학교·선배이름이 적힌 피킷을 갖고 나와 교가와 구호등용 외치며 선배들을 격려하는가 하면 뜨거운 커피·엿·사탕 등을 나눠주며 『최선을 다하라』고 힘을 북돋워주느라 경쟁을 벌이는 모습들. 그중 서울 청량중 고사장 앞에는 6개 여고의 합창단을 포함한 10여개 서클 후배학생 1백여명이 몰려나와 격려의 노래를 경쟁적으로 부르는 바람에 한동안 교통을 정리하는 경찰의 호각소리조차 안 들릴 정도로 혼잡.
또 삼선중고사장에는 우이동감리교회 신도4명이 『필승』이라고 쓴 피킷을 들고 나와 고사를 치르는 학생신도 4명을 격려했으며 S학원은 「논술고사 요령」을 담은 14페이지짜리 팸플릿을 고사장 앞에 몰려든 l백여명의 가족·교사들에게 나눠주며 수강생 유치작전을 펴기도.
○…교복자율화 이후 학생들의 복장이 자유로워진데다 여학생의 경우 화장을 한 수험생들이 많아 서울 동대문여중 교문 앞에서는 교문정리를 맡아보는 교직원들과 학교로 들어가는 여학생 수험생들 사이에 신분확인 실랑이가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한 교직원은 『교복이 없는데다 화장까지 하고 오니 학생인지 학부모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푸념.
○…서울 도봉여중 고사장 앞에서는 무학여고3년 양지운양(17)이 집에 안경을 놓고 나왔다며 교문 앞에서 발을 구르자 서울북부경찰서 동화파출소 성준욱 순경(33)이 급히 인근 안경점에서 안경을 구입해 전달해 줘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충남 제25고사장인 대신중학교에서는 아들의 대입학력고사를 지켜보려고 대전에서 올라온 이복진씨(46·여·서산읍동문리)가 아들 김기역군(19·충남기계공고)을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졸도, 주위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기도.
이씨는 전날 서산에서 아들이 하숙하고있는 대전에 올라와 김군의 시험걱정을 하다 한번 쓰러졌는데도 이날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고사장까지 나와 또 다시 졸도, 선병원에 옮겨졌으나 사경을 헤매고 있다.【대전=연합】

<양호실서 시험 치러>
○…충남도내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4명이 특별시험을 치르기도. 지난 16일 급성맹장수술을 받아 병원에 입원중인 박정아양(19·대전성모여고)은 이날 병원측의 앰뷸런스편으로 제16고사장인 충남여고에 도착해 양호실에서 시험을 치렀고 제32고사장인 충남고교 양호실에서는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골절상을 입은 이재준군(19·한밭고)과 김태윤군(19·대전고)등 2명이 각각 응시. 또 천안3고사장인 부일고등학교에서는 김정군(19·홍주고)이 우측대퇴부 골절로 양호실에서 혼자 시험을 치르기도.

<온정에 보답하겠다>
○…이번 대입학력고사에 각 지역 교도소에 수감중인 재소자들이 대거 응시, 눈길을 끌었다.
서울 영등포구치소에 수감중인 재소자 6명은 양화중교정에 따로 마련된 고사장에서 교도관과 감독관 2명의 감독을 받으며 시험을 치렀다.
○…원주교도소에 수감중인 이모군(23) 등 6명과 강릉교도소에 재소중인 김모군(24) 등 2명은 이날 원주 대성고교고사장과 강릉 강릉고교 고사장에서 각각 시험을 치렀는데 지난 5월 고졸자격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이번에 다시 대입학력고사에 도전한 김모군(24)은 『꼭 좋은 점수를 얻어 그 동안 부모·친지들에게 지은 죄에 대한 사죄와 주위의 온정과 배려에 대한 보은의 뜻을 보이겠다』고 결의를 보이기도.
또 인천소년교도소 재소자 김모군(20) 등 25명과 청주교도소 재소자 1명, 청주소년원생 14명도 각각 해당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지난해 11월 폭행죄로 청주소년원에 수감돼 형기를 1개월 가량 남겨두고 있는 임모군(l8)은 『기필코 좋은 성적을 올려 대학에 진학,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발로 써 답안지 작성>
○…3살 때 철도사고로 양팔을 잃고도 발로 필기를 하고 그림도 그려 화제를 모았던 오순이양(18·마산제일여고3년)이 마산여고 제10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오양은 평소 자신이 학교에서 사용하던 특수 제작된 책·걸상을 시험장으로 옮겨 발로 답안을 작성.
마산제일여고측은 평소 학교수업 때 사용하던 발을 책상 위에 울려놓기 편한 오양의 책상을 19일 수험장인 마산여고로 옮겨놓는 등 배려했다.
○…부산시내 일부 양과자점에서는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노린 상흔을 발휘,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부산시광복동 B양과자점 등 시내중심가 양과자점마다 가로20cm, 새로l5cm 크기로 만든 종이상자 안에 『합격을 기원합니다』 『수험생을 위한 행운의 세트』라고 써놓고 개당 1천2백원씩에 팔고있다.
K양과자점 주인 L씨(53)는 이 행운의 선물세트를 하루평균 1백∼3백개씩 팔아 최고 30여만원의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며 기쁜 표정.

<54세 할머니도 응시>
○…전주 제2고사장인 전주남중학교에서는 전북 도내 최고령자인 황감순씨(54·전주금평국교 교사)가 시험을 치러 눈길을 끌었다.
황씨는 지난 55년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30년간 교편생활을 해온 1남2녀의 가장으로 『이번 시험 결과에 따라 계절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전주=연합】

<사고>
○…수험생 석중배군(19·선린상고졸)은 20일 상오6시15분쯤 지하철 독립문역 부근에서 수험표를 분실, 고사장인 용산중학교에 도착해서야 이를 뒤늦게 알고 발을 동동 굴렀다. 석군의 수험표는 출근길의 한 시민이 발견하여 신고, 서대문경찰서소속 141호 기동순찰차가 고사장까지 가져다주어 상오7시30분쯤 석군에게 전달됐다.

<학교옮긴 줄 몰랐다>
○…서울 신림중에서 시험을 치른 신용호군(20·재수생)은 지난여름 남부순환도로에서 서울대앞으로 신림중이 교사를 옮겨간 것을 모른 채 고교사자리로 갔다가 당황했으나 남부경찰서소속 순찰차가 신군을 때마침 발견, 시험시작 3분전인 상오8시47분에 가까스로 고사장에 도착했다.
신군은 전날 예비소집에 나가지 않았었다.
○…서울 잠실동 정신여중에는 고사장 안내표지판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입실완료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한 수험생들이 고사장교실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기도.
○…서울반포중에서 시험을 치른 염태식군(21·서울고졸)은 공군사관학교 4년재학 중 목뼈가 골절돼 퇴교, 다시 일반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염군은 신경계통에 장애가 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지 못해 이 학교 양호실에서 감독교사가 답안을 대리 작성하는 특별시험을 치렀다.

<버스 타고 가다 중상>
○…20일 상오8시20분쯤 부산시사직2동 국제여객 10번 버스 종점 앞길에서 대입수험생인 세화여자실업고교 3년 윤영선양(18)이 타고 가던 칠운교통 소속 부산1바3036호 택시(운전사 윤주섭)가 종점에서 나오던 국제여객소속부산5자2788호 시내버스(운전사 이갑호)와 충돌하는 바람에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인근 대동변원에 입원, 치료중이다.
윤양은 사직2동 주공아파트 앞길에서 고사장인 사직여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 타고 가다 이 같은 사고를 당했다.【부산=연합】

<수송>
○…전자대리점 상인 김기수씨(37·서울 대림2동1051)는 이날 상오6시30분부터 직원 4명과 포니승용차 1대와 봉고 3대를 동원, 지하철2호선 대림역에서 전동차를 내리는 수험생 70여명을 인근 고사장인 영림·영서·영남·구로중 등으로 실어 날랐다.
서울남부경찰서는 『좋은 성적을 바랍니다』라는 어깨띠를 경찰관들에게 나누어줬고 수험생들에게도 같은 내용이 적힌 리번을 달아주며 고사장을 안내.
○…서울 등 주요도시에선 이날 상오7시부터 각 고사장으로 통하는 도로가 모두 심한 교통체증을 빚어 각 고사장에는 입실완료시간 8시50분을 넘겨 입실한 수험생들이 많았으며 시험시작시간 8시50분을 넘긴 학생들도 있었다.
고사장 근처의 교차로는 물론 서울시내 도로의 교차로가 수험생을 실은 택시와 승용차 등으로 뒤범벅 돼 교차로를 빠져나가는데 20여분 이상씩 걸렸으며 성급한 차량은 중앙선을 넘고 끼어들기를 하는 사례가 많아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들도 손을 못 쓸 정도.
○…서울 반포중학교에서는 수험생들이 교통체증으로 인해 지각할 것에 대비, 8시10분까지 입실하도록 돼있는 것을 45분쯤 늦추어 시험시작 5분 후인 상오8시55분까지 입실을 허용하기도.

<고사관리>
○…학력고사가 끝나면서 시험부담에서 해방되는 것은 70여만 수험생과 학부모만이 아니었다.
마치 출옥하는 사람들처럼 오히려 해방감을 느낀 것은 3백51명의 출제 및 인쇄요원. 이들은 길게는 한달, 짧게는 2주 동안 외부와는 일체 차단 당한 채 제한구역 안에서 생활하다가 20일 마지막 4교시가 시작된 하오4시 이후에 풀려났다.
풀려난 3백51명은 출제관계자 1백83명, 인쇄관계자 1백68명으로 이중에는 경찰관 31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그 동안 손제석 문교부장관과 김찬재 문교부차관, 장기옥 중앙교육평가원장이 각각 베푼 저녁식사에 응하는 일 외에 일체 외부와 단절됐고 숙소에서 나오는 음식물찌꺼기나 쓰레기도 모두 점검됐다.
○…인쇄관계자는 지난 7일 이후 2주간이었지만 작업장에 바로 연금돼 더욱 어려운 고통을 참아야했다.
외곽경비를 말았던 18명의 경찰관도 그랬지만 기계 옆에서 생활해야 했던 18명의 평가원 관계자와 1백32명의 B인쇄소 직원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기름냄새를 맡으며 생활해야 했던 것.

<손문교장관 나와 격려>
○…손제석 문교장관은 상오8시20분쯤 서울시 제6고사지구 제6고사장인 서울 반포중에 들러 20분 동안 수험생들과 시험관계자들을 격려.
최열곤 서울시교육감, 최문길 강남교육구청장 등의 안내로 반포중에 도착한 손장관은 교장실에서 김현태 교장으로부터 지원자 현황, 고사장 준비상황 등을 브리핑받고 『전국이 영상기온으로 포근한 날씨라 수험생들을 위해 퍽 다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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