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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운찬 칼럼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그리고 공정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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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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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문제는 역시 경제였다. 지난 6월 23일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보통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지지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근원을 둔 지나친 경제적 불평등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유럽과 미국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실패를 인정하고 새로운 경제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재성장의 필요 때문에 동반성장·경제민주화·공정성장 정책이 표방됐고 국민의 관심도 높다. 그런데 정치권과 국민의 높은 관심에도 세 정책에 대한 구분과 정확한 이해는 부족한 편이다. 이에 간략하게나마 개념 규정과 비교를 통해 세 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먼저 동반성장은 같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는 것으로 사회 구성과 운영의 기본 원리 또는 정신이다. 사회 구성과 운영의 원리는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와 사회 구성원과 국가 사이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사회 구성과 운영의 원리로서 동반성장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람들과 국가와의 관계가 ‘동등한 동반자 관계’인 사회를 조성하고, 그러한 사회가 유지되도록 운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반성장은 함께 잘살아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만 챙기는 ‘승자 독식의 경쟁’을 배제하고 공동체 구성원이 공동 승자가 되는 ‘협력적 경쟁’을 추구한다. 있는 사람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한테 주자는 게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 전체의 파이는 크게 하면서 동시에 분배도 개선시키자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대·중소기업 간의 관계뿐 아니라 빈부 간, 도농 간, 서울과 비서울 간, 남녀 간, 세대 간, 남북한 간 그리고 국가 간 동반 관계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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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란 경제사회가 민주주의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하나의 커다란 교환체계로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단순히 재벌을 견제하는 것을 넘어 경제사회의 구성원(기업·노동자·소비자)들 사이에 형평이 이뤄져 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각자가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다른 구성원과의 교환을 거부할 수 있을 때 경제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할 수 있다.

공정성장은 시장에서 거래를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구두 주문, 기술 탈취, 납품가 후려치기, 장기어음 결제를 불식하자는 것이다. 이에 더해 벤처를 육성하되 패자 부활을 장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은 개인의 이익을 무한히 추구할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승자 독식의 경쟁이다. 그런데 자유와 경쟁을 무한히 확장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경제 모델을 바꾸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없어질 수도 있다(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회장)”는 고백으로 귀결됐다. 그 이유는 애덤 스미스가 말했던 ‘공평한 관객(impartial spectator)’ 정신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공평한 관객은 개인의 이기심을 실현하는 자유와 경쟁을 무한히 허용하지 않고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한다. 따라서 공평한 관객이 사라지고 자유 경쟁만 남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오직 개인의 이익 추구만을 목표로 함으로써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킨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경제민주화’와 ‘공정성장’은 한계가 있다. 경제민주화가 재벌독점을 해소해 중소기업과 근로자에게 자유로운 경쟁 기회를 부여하고, 공정성장이 공정한 제도와 법을 만들어 공정 경쟁을 유도하더라도 공동체와 인간에 대한 특별한 도덕적 의식이라는 제한을 두지 않으면 시장에서의 경쟁은 시장 탈락자를 양산할 것이고, 그러한 과정이 축적되면 또다시 경제 불평등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는 재벌독점체제가 해소되지 않은 시장에서는 공정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힘의 불균형 때문에 중소기업과 근로자가 대기업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보는 데 반해 ‘공정성장’은 재벌독점 해소에 소극적이다. 공정한 경쟁만 가능하다면 재벌독점체제가 유지되더라도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너무 안일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인류사와 경제 분야의 많은 연구에 따르면 경쟁만이 아니라 협력도 할 때 경쟁 참여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간다. 따라서 바람직한 경제 질서 구축을 위해서는 경제 주체들 간의 공정한 자유 경쟁도 중요하지만 협력적 경쟁 문화와 제도를 더욱 넓고 깊게 구축해야 한다. 21세기형 공평한 관객 정신은 함께 더불어 협력해 성장하고 더불어 나누는 ‘동반자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동체 구성원의 지속적인 행복과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동반성장이 오늘날 서민가계 불안 극복과 경제 재도약을 위한 최선의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