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방'식 대출사기 신용 불량자 또 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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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카드대금을 장기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金모(33)씨는 지난 5월 초 신용불량자에게도 돈을 빌려준다는 생활정보지 광고를 보고 대출중개업체 B사를 찾았다.

이 회사는 金씨에게 대출 신청을 하면 45일 후에 1천만원을 연 12%의 비교적 낮은 금리로 대출해 주겠다며 2백만원을 대출대행 수수료로 미리 낼 것을 요구했다.

어디에서도 돈을 빌리기 힘들었던 金씨는 급하게 2백만원을 구해 B사에 갖다줬지만 막상 대출금을 받으러 찾아갔을 땐 회사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지난 5월 말 현재 3백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들을 상대로 한 대출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신용불량자의 경우 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기 힘들다는 약점을 이용해 대출 알선을 미끼로 수수료를 떼먹는 수법이다.

금융감독원은 17일 올 들어 대출사기 혐의가 있는 10개 업체를 적발해 경찰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9개 업체는 신용카드회사들이 현금서비스를 줄이기 시작한 5월 이후에 적발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던 대출사기와 관련된 신고가 5월 이후에는 월 50여건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T사는 전국 2백여개 대리점을 모집한 뒤 지역별로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낸 뒤 5월 한달간 1만3천여명에게 신용 조사비 명목으로 10만~30만원씩을 받거나, 대출을 조건으로 정수기 등을 팔아 모두 9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업체는 미국의 유명 대부업체인 Q사가 6월에 한국에 진출하면 돈을 대출해주겠다고 했으나 모두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B사는 서울 잠실과 수원.인천 등지에 대리점을 두고 정부산하기관이 주도하는 '신용불량자 돕기'에 관여하고 있다고 속여 대출금액의 20%를 선수금으로 받아 가로챈 뒤 잠적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B사는 1인당 대출한도가 1억5천만원에 달했다"며 "대출규모가 컸던 만큼 피해금액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A사의 경우 19만8천원을 미리 받은 뒤 다단계 판매 형식으로 18명의 회원을 확보할 경우 연 9%의 금리에 2백만원을 대출해 준다고 대출 희망자들을 유혹했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최근 대부업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정식으로 등록한 대부업체들마저 이 같은 불법 사기대출에 가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대출 사기업체들은 전국적인 규모의 대리점을 2~3개월 이상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단속이 강화되면서 1~2주 만에 대출신청자들에게서 수수료를 받아 챙긴 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떴다방'식 대출 사기업체들이 늘고 있다.

금감원 조성목 비제도금융조사팀장은 "대부업체의 연간 최고금리(66%)보다 낮은 금리로 신용불량자에게 대출해준다는 업체는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며 "특히 신용조사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면 대부분 대출사기업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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