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5년 만에 최저치…인민은행 환율정책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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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후폭풍이 중국에 상륙했다.

기업들 수출 경쟁력 유지엔 도움
추가 급락 땐 자본 유출 가속화 우려
인민은행, 위안화 방어에 안간힘
투기 세력은 ‘더 떨어진다’에 베팅

브렉시트 쇼크에도 중국 증시는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문제는 위안화 값이다. 안전자산 선호로 미국 달러화 값이 뛰면서 위안화 값은 29일 5년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위안화 가치는 전날보다 0.05% 떨어진 달러당 6.6515위안에 거래됐다. 2010년 12월14일 이후 가장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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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값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는 중국 인민은행의 속내는 복잡하다. 중국이 경제성장률 6%대의 중속(中速) 시대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위안화 약세는 나쁘지 않다. 중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위안화 값이 급락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중국에 투자된 해외 자본이 환차손 등을 우려해 중국을 빠져나가면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고, 이 결과 추가 자본 이탈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경험이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1일 중국인민은행이 위안화 고시 환율 산정방식을 친시장적으로 바꾸겠다면서 기습 절하한 뒤 연말까지 1조 달러의 자금이 중국을 빠져나갔다. 투자자들은 해외 자산에 눈을 돌렸고, 일부는 달러 표시 채무를 줄이기 위해 돈을 빼낸 것이다.

중국 주식 시장이 출렁였던 1월에도 중국 정부는 위안화 가치 급락에 베팅한 투기 세력과 격전을 치르는 등 홍역을 겪었다. 케닉스 라이 동아시아은행 외환 애널리스트는 “올 하반기에도 중국의 경제 둔화가 지속하며 위안화 하락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인민은행은 위안화 가치의 급락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런 속내를 드러내듯 인민은행은 29일 위안화 기준환율을 달러당 6.6324위안으로 고시했다. 전날보다 위안화 값을 0.31% 올렸다. 24일 브렉시트 결정 이후 처음으로 위안화 값을 올린 것이다. 위안화 값의 급락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인민은행은 전날 종가의 ±2% 범위 안에서 기준환율을 매일 외환시장이 열리기 직전에 고시하고, 이 기준환율을 바탕으로 거래가 시작된다.

인민은행은 이에 앞서 28일에는 “위안화 환율은 기본적으로 안정적이며, 앞으로도 현재의 시스템에 따라 환율을 운영하겠다”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인민은행의 이러한 행보와 발언에도 시장은 위안화 값의 추가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말까지 위안화 가치가 달러 대비 5~7%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호주뉴질랜드(ANZ)은행은 위안화 값이 달러당 6.65위안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UBS그룹은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6.8위안까지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투기 세력은 위안화 급락에 베팅하는 모습이다.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 방어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에 24일 이후 역외 시장의 위안화 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 영향으로 역내 위안화 값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29일 역외 시장에서 위안화 값은 달러당 6.6661위안으로 역내(6.6515위안)보다 더 낮았다.

다이와 캐피털 마켓츠의 케빈 라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자본 유출 2라운드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코메르츠방크를 인용해 중국이 위안화 급락과 이에 따른 자본 이탈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29일 홍콩 위안화 역외 시장에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리리우양 도쿄 미츠비시 UFJ 전략가는 “브렉시트로 인해 인민은행의 환율 정책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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