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D 가로등 환히 밝힌 골목길…늦은 귀가 불안감 덜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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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청이 배재대 후문 거리를 여성친화행복거리로 조성했다. 28일 배재대 학생들이 무인택배보관함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 배재대 글로벌관광호텔경영학과 4학년 김현주(22·여)씨는 캠퍼스 후문 주변에 설치된 ‘여성 안심 무인 택배함’을 자주 이용한다. 학교 옆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김씨는 그 동안 집으로 택배 주문을 망설였다. 택배 기사를 사칭한 범죄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인택배함 덕분에 고민을 덜었다.

대전 배재대 후문 주변 거리 500m
여성안전 초점 맞춰 보행 환경 개선
무인 택배함 만들어 범죄 예방 효과

택배함은 대전시 서구청이 설치했다. 이용방법은 무인택배함에 물품을 넣어 줄 것을 요청하면 택배기사가 보관함에 물건을 넣고 비밀번호를 설정한다. 비밀번호는 민간 업체가 운영하는 콜센터로 통보되고, 콜센터는 택배 주인에게 문자메시지로 이 번호를 알려준다.

운영비는 서구청이 부담한다. 총 20개인 무인택배함의 이용실적은 매월 100여 건이다. 대부분 혼자 사는 여성이 사용한다. 김씨는 “마음 놓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무인택배함이 설치된 곳은 잡초와 쓰레기 더미가 방치된 후미진 골목길이었다. 노후 아파트와 대학생이 거주하는 원·투룸 밀집지역으로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아 범죄 발생이 우려되기도 했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기피 장소였다.

서구청은 지난해 12월 이 일대 500m거리를 정비하고 ‘여성친화행복거리’로 불렀다. 우선 잡초와 쓰레기 더미를 모두 걷어냈다. 노후된 아파트의 삭막한 담벼락에는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여성의 일생을 표현한 파스텔톤의 그림을 그렸다. 가로등도 LED조명으로 모두 교체했다. 사업비로 5000만원을 들였다.

여성친화거리 조성에 앞서 주민·대학생과 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했다. 한국전력은 이 일대 난립한 전선을 정비하고 전신주를 새 것으로 교체했다. 장종태 서구청장은 “주민과 대학생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거리를 꾸몄다”며 “민·관·기업이 힘을 함께 모아 환경을 바꾼 모범 사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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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청이 배재대 후문 거리를 여성친화행복거리로 조성했다. 28일 배재대 학생들이 여성안심벨’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보행 환경을 개선하고 여성들의 안전에 초점을 맞췄다. 골목 한가운데에는 ‘여성 안심벨’도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벨을 누르면 폐쇄회로(CC)TV 관제센터로 연결돼 신속하게 도움받을 수 있다. 또 이 골목 편의점 3곳은 여성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면 상황을 경찰관서로 전달해 주는 여성안전지킴이집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자가 없어 방치돼 있던 공중전화박스는 마을문고로 꾸몄다. 각종 교양도서 50여 권이 비치돼 있다.

주민들은 반기고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유황식(65)씨는 “동네 분위기가 바뀌자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음식점 고객도 늘었다”고 말했다. 배재대 TESOL비즈니스영어학과 3학년 이혜진(22·여)씨는 “늦은 시간에도 골목길을 안심하고 다닐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구는 올해 이곳에 CCTV를 추가 설치하고, 30여개 업소의 간판 교체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고 무질서하게 부착된 간판은 정비한다.

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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