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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올 대졸자 10만명이 "취업 재수생" 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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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취업철을 맞은 대학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어둡다.
내년 2월의 대학졸업예정자는 14만3천명. 1년전에 비해 3만명이 늘었고 82년(6만2천7백명)에 비하면 2배이상 불어났다.
이에 비해 올해 대학졸업생이 두드릴수 있는 취업문은30대그룹의 1만1천1백23명(노동부통계)을 비롯해 교사·공무원·중소기업 등등을 모두 꼽아야 5만명 남짓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10만명 가까이는 원하는 직장은커녕 아무데도 발붙이기가 힘 드는 판이다.
대학원을 가고 군대를 간다 해도 감당할 능력이 없다. 결국 상당수가 취업재수생으로 남을 판이다. 올해 다시 취업문을 두드릴 취업재수생도 4만명 정도로 어림잡고 있어 고급실업자는 갈수록 늘어날 상황이다.
81년부터 실시된 졸업정원제로 대학생수는 격증했고 올 봄 바로 그 학생들이 졸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기는 거꾸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내리막 곡선을 긋기 시작했다.
기업의 인력줄이기가 시작됐다. 있던 사람도 내보내는 판에 신규채용을 늘릴 턱이 없다.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었으니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진 것은 불문가지.
학생은 학생대로 대학은 대학대로「취직시키기」에 나서야 할 만큼 다급해졌다.
올 들어서는 더욱 바빠졌다.
각 대학마다 때 아닌 동문회를 열어 총·학장이 나서 「후배쓰기」를 간곡히 당부하는가 하면 학생처 주관으로 특강을 마련, 영어·논문지도는 물론, 면접 요령까지 취업속성코스 (?)를 실시하고 있다.
동국대는 지난 10일 3백여 기업에 총장의 서한을 발송한데이어 26일에는 교수30여명으로 구성된 취업지도 위원회가 회사들을 직접 방문, 본교생들의 채용을 호소했다. 지난 7월 상설기구로 취업정보센터를 설치한 고려대도 교우회 (회장 장덕진)를 통해 동문기업인 및 각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상대로 취직알선에 나섰다.
홍익大는『취업대책』이라는 책자까지 발간해 4학년생들에게 배포하고 있으며 성균관대는 지난달 말에 2백여개 기업에 총장명의로 공한을 보내「배려」를 부탁했다.
그러나 더욱 다급한 것은 졸업당사자들.
14만3천명의 새 졸업자와 취업재수생 약4만명등 올해구직전선에 나설 사람은 약18만여명.
이중 노동부가 조사한대로 대학원진학 1만3천7백명, 군입대 1만6천명, 개인사업자등 기타 1만여명을 빼더라도 14만여명이 5만여개의 일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여야한다.
『매일 신문 구석구석을 훑어 구인광고를 읽고 철하고 있지만 그래도 뭔가 빠진 것 같아 친구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시험준비를 하고 있어요.』S대 도서관어귀에서 여럿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던 한 학생의 얘기.
『예전에는 동문후배들이 취업을 앞두고 찾아오면 신경도 써주고 우리회사로 오라는 권유도 많이 했었어요. 요즘이야 후배가 와도 1차 시험에 붙으면 다시 보자는 얘기밖에 해줄게 없어 미안할 뿐이예요.』D사 인사담당자의 말이다.
취직문이 좁다보니 예전에는 잘 찾지 않던 직종까지 대졸자들로 만원사례다.
지난8월말 현대자동차의 판매직사원 3차 공개채용 때는 4백명 모집에 4천2백명이 몰렸다. 학력제한이 없는데 전체 지원자중 88%가 4년제 대졸자였다. 3년전 만해도 대부분 고졸자였던데 비하면 엄청난 변화.
지난 8월 전기통신공사가 고졸대상으로 모집한 행정직(6급주사) 공채자리에는 7백50명 모집에 5만4천9백27명이 지원, 70대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그중90%가 대졸학력이었다.
대졸군의 급증으로 학력덤핑사태도 일고 있다. 각종 서비스 및 외판분야는 물론이고 빌딩 경비직·아파트관리인등도「취업재수기간중」일자리로 택한 대졸자를 보기가 어렵지 않다.
취업광고에 워낙 많은 지원자가 몰리다보니 기업체의 채용방법까지 바뀌고 있다.
결원이 생길 때마다 신문광고를 통해 소수인원을 수시로 보충해온 한국갤럽연구소는 최근 공개광고 없이 교수추천만으로 사원을 채용하는 모집방법을 병행키로 했다.
또 종래 부전공·관련계열출신자까지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지원기회를 줬던 대기업들이 응시자격을 크게 제한한 것도 올 들어서의 새로운 현상이다. 원서나 추천서등에 아예 특정학과를 지정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 두해전만해도 통계과 출신 모집자리에는 수학과 혹은 이과계열 전공자가 낄 수 있었으나 이제는 지원해봐야 안된다.
뿐만 아니라 몇몇 대기업들은 필요한 대학 특정학과에만 추천서 겸 응시원서를 보낸다.
본사에서는 일체 개인적으로 원서교부를 하지 않는다. 결국 추천 받은 선택된 소수만이 원서를 손에 쥐고 시험에 응시, 취업문을 두드릴 수 있다.
주로 이른바 일류대 공학계나 상경대 정도에 집중된 최근의 이런 제한추천으로 나머지 대학이나 일류대 비인기학과 출신들은 지원기회조차 크게 줄었다.
지난 2월 졸업자중 공학계와 의·약학계가 72∼84%의 취업률을 보인데 비해 어문·인문· 이학계열 등은 50%미만의 취업률에 그친 것 도 이러한 추세 때문이다.
취업을 못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 대학원을 가는 사람도 많다.
서울대의 경우 84년에 2·7대1이던 대학원 경쟁률은 85년 3·8대1로 높아졌고 같은 기간 고대는 2.9대1에서 5.2대1로, 연대는 2.6대1에서 4대1로 올라갔다. 올해는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뿐이 아니다. 취직이 안되다 보니 교사지망을 위한 교직과목신청이 크게 늘어 아예 성적순으로 인원을 제한하는 진풍경까지 일고 있다. 그렇다고 교사되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서울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4∼5년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다 보니 대졸실업자가 갈수록 늘어 80년에 전체실업자 74만9천명중 대졸이 6만(8%) 어던것이 84년에는 56만7천명중 14·5%인 8만2천명으로 늘었다.

<박태욱·박신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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