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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무해한 살균제 없다, 인체 유해 정도 다를 뿐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17여 년 동안 ‘살인’ 제품을 버젓이 생산·유통해 수많은 소비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친 기업에 반드시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태를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 정부 부처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철저한 검찰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맹목적인 살균 열풍에 휩쓸리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고, 일상생활용품의 안전관리에 대한 법과 제도도 획기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정부는 조직·인력·예산을 보강해야 한다. 또 규제를 강화하는 구태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칸막이에 갇혀 있는 부처에 흩어져 있는 관리체계를 효율적으로 통합하고 정부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생활용품 관리체계 일원화 필요

강력한 살균력을 자랑하는 살균·항균·제균 제품이 넘쳐난다. 비누·세제·화장품·휴지·방향제·탈취제를 비롯한 거의 모든 생활용품이 살균력을 강조한다. 그릇·도마·플라스틱 용기도 살균력이 있어야 하고, 내복·벽지·페인트도 살균·항균 기능을 갖춰야 한다. 심지어 공기청정기·에어컨·젖병·세탁기도 살균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컵·야채·과일 전용 살균기도 있고, 살균제가 들어 있는 물티슈·방향제·코팅제도 있다. 물론 피해 규모조차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살인적인 가습기 살균제도 있었다.

살균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비교적 최근에 시작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에는 아무도 살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살균에 대한 우리의 뜨거운 관심이 절박한 경험이나 필요에 의해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보건·위생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소비자의 불안과 공포를 부추겨 이익을 챙기려는 비윤리적 기업의 ‘공포·노이즈 마케팅’이 선정적인 보도로 관심을 끌어보려는 황색 저널리즘에 의해 증폭되면서 등장한 사회병리학적 현상에 더 가깝다. 살균에 대한 우리의 상식 부족으로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확실한 증거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살균력을 강조하는 제품에 열광적으로 집착하지만 정작 살균 제품의 정확한 작동 원리나 안전한 사용법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박테리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흙 속에도 있고, 물에도 있고, 공기 중에도 있다. 심지어 우리의 몸속에도 대장균을 비롯한 다양한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박테리아의 생명력은 상상을 넘어선다. 짜디짠 소금 호수, 차가운 빙하, 펄펄 끓는 온천수, 섭씨 수백도의 심해 열수공, 강한 독성의 위액(염산)에서도 멀쩡하게 살아가는 박테리아가 있다. 서식 환경이 나빠진다고 생존을 포기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돌연변이를 통해 변신할 수도 있다. 지구상에 얼마나 다양한 박테리아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살고 있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종의 80%가 박테리아고, 지구의 진짜 주인은 우리가 미물이라고 깔보는 박테리아라는 주장이 있다.

지구 생물의 80%는 박테리아

모든 박테리아가 나쁜 건 아니다. 전 세계 모든 문화권의 식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발효’는 발효균이라는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신비다. 간장·된장·김치·식초·전통주가 모두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이고, 빵·포도주·맥주·소시지·요구르트·피클·발효차도 마찬가지다. 대장에 서식하는 대장균도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파수꾼이다. 심지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부패균도 자연생태계의 물질 순환을 가능케 해주는 고마운 역할을 한다. 박테리아는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이웃이다.

물론 우리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박테리아도 있다. 폐렴을 일으키는 폐렴균도 있고, 위염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균도 있다. 우리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병원균’이라고 부른다. 음식물을 썩게 해 먹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부패균도 있다. 병원균과 부패균의 피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세균에 의한 감염성 질병의 역사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흑사병(페스트균)으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기도 했고, 매독(매독균)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달라졌다는 주장도 있다.

살균은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병원균과 부패균을 제거하는 일을 한다. 가장 간단하고 일반적인 방법은 수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건조·훈제·동결건조와 더불어 소금·꿀(설탕)·식초를 이용하는 염장·절임은 인류 공통의 전통식품 살균 기술이다. 박테리아가 견딜 수 없는 높은 열을 이용할 수도 있다. 통조림·진공포장처럼 박테리아의 침입을 차단하는 방법도 있다.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살균·소독 방법도 있다. 물로 씻어내는 것도 일반적이다. 비누를 이용하면 살균 효과는 더욱 커진다.

강한 부식력으로 세균의 세포막을 파괴해 버리거나 세균의 생리작용을 억제하는 화학물질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1865년 페놀을 소독제로 사용했던 영국의 조셉 리스터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방법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살균제를 사용한다. 구연산(레몬산)·에탄올·아세트산처럼 식품에서 유래한 것도 있고,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포르말린·하이포염소산처럼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도 있다. 모든 살균제는 인체에 독성을 나타낸다. 살균제의 인체 독성은 매우 다양하다. 음식물과 함께 적은 양을 섭취해도 큰 문제가 없는 살균제도 있지만 피부에 소량만 닿아도 심각한 상처가 생길 정도의 맹독성도 있다.

인체에 안전한 살균제는 어디에도 없다. 모든 살균제는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 유해물질이다. 인체 독성 정도에 따라 방부제·살균소독제·보존제·항생제 등으로 분류한다. 방부제는 인체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살균소독제는 피부 접촉 정도는 제한적으로 허용되지만 인체의 섭취나 흡입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제대로 알고 쓰면 별문제 없어

보존제는 법으로 정한 허용 범위 안에서 섭취할 수 있지만 눈이나 호흡기에 노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항생제는 질병 치료를 위해 의사의 처방을 받은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투약한다. 살균제 분류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인체에 독성이 있는데도 살균제를 사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살균제를 사용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이 살균제의 독성을 감수하는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많은 소비자가 걱정하는 ‘물티슈’의 경우가 그렇다. 대용량으로 포장된 물티슈의 편리함은 쉽게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물론 깨끗한 물에 적신 물티슈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살균제를 넣지 않은 물티슈는 포장을 뜯으면 곧바로 사용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공기 중의 세균에 의해 부패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쉽게 썩는 물티슈보다 약한 독성의 살균제가 포함된 안 썩는 물티슈를 원한다. 정말 살균제를 싫어한다면 낱개로 포장된 일회용 물티슈나 물을 따로 가지고 다녀야 하는 건(마른)티슈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어느 정도의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로 악명이 높아진 PHMG와 CMIT는 본래 생활용품에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된 저독성의 살균소독제다. 물티슈뿐 아니라 샴푸·로션·다림질보조제·방향제·탈취제 같은 생활용품에도 사용된다. 생활용품을 통해 살균소독제를 지나치게 많이, 장시간 흡입하거나 눈에 직접 닿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방향제와 탈취제도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살균제의 부작용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기업도 소비자에게 안전한 사용법과 함께 만약의 부작용에 대처하는 방법도 분명하게 알려줘야 한다. 정부도 비윤리적이거나 무책임한 기업으로부터 소비자를 지켜주기 위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 이덕환 서울대 화학과 학·석사, 코넬대 이론화학 박사,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장. 1985년부터 서강대에 몸담고 있다. 개인 블로그 ‘문진(問津)으로 여는 탄소 문화의 시대’ 등을 통해 사회와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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