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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 홍보하려다 인권 놓친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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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민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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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욱
사회부문 기자

경기도 성남시가 27일 다소 황당한 보도자료를 냈다. 성남시의료원 건설공사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공의료정책과 의료원건립팀 사무실 내부에 이른바 ‘청렴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해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자료의 제목은 ‘청렴 정신으로 세운다…주민 발의 성남시의료원’이다.

이날은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발해 지난 7일부터 열흘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하다 병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업무 복귀 첫날이었다.

성남시는 공공병원인 성남시의료원이 주민 1만6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 조례 를 근거로 한 만큼 설립 취지를 살려 청렴 정신으로 의료원을 세우겠다고 설명했다.

성남시가 말하는 청렴 CCTV는 8명이 근무하는 의료원건립팀 사무실에 있는 기존 시설관리용 CCTV 기능을 확대한 것이다. 출입구 방향에 한정된 기존 CCTV의 촬영 각도를 사무실(66㎡) 전체로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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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앞으로 의료원이 완공되는 2017년 12월까지 건축·설비·전기·소방 공사 과정에서 이뤄지는 담당 공무원과 업체 직원 간 사무 장면을 24시간 기록한다. 성남시는 지난달 23일부터 의료원건립팀 직원들의 동의 과정을 거쳤다고 강조했다.

5년 전부터 자신의 집무실 천장에 CCTV를 운영 중인 이재명 시장은 이번 청렴 CCTV 확대 설치를 통해 자신의 투명 행정을 적극 홍보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장은 중요한 사실을 놓친 것 같다. CCTV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감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 말이다. 이 시장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소위 ‘인권변호사’로 활동해 온 전력이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책실 관계자는 “CCTV는 얼마든지 감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 필요하다면 현장 확인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비리 차단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동료가 뻔히 눈 뜨고 근무하는 좁은 사무실에서 돈봉투나 청탁을 주고받을 바보는 없다. 묘하게 성남시의 생뚱맞은 이번 조치는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야권의 대권 잠룡 6명 중 한 명으로 이 시장을 치켜세운 상황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 시장의 과도한 개인 홍보를 노린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성남시 관계자는 “공공병원의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며 “아직 다른 부서로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목적이 올바르다 하더라도 사무실 내부 CCTV 설치는 다분히 인권침해적인 발상”이라며 “실효성마저 의문인 상황에서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김 민 욱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