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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신용평가 없앨 대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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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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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 조선·해운 부실 문제는 규모가 매우 크고 채권은행과 정부가 너무 늦게 대처했다는 점에서 논란거리다. 회사채와 해당 발행기업의 상환 가능성을 평가해 등급을 매기는 신용평가사를 바라보는 눈초리도 매섭다. LIG건설·동양종금 사태가 바로 얼마 전인데 조선·해운 회사들의 구조조정으로 회사채 투자자의 손실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투자자 사이에선 신용평가사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엉터리 예보를 일삼는 이 처치곤란 라디오를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국에서는 AAA 등급의 회사채 중 절반 이상이 다른 나라의 투자부적격 등급에 해당한다는 블룸버그의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신용평가제도가 가장 발달한 미국도 월드콤과 엔론 사태를 통해 허점을 드러내더니 구조화채권에 대한 부적절한 평가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의 하나가 지목되기도 했다. 신용평가사를 벌하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결책이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며 아예 새로운 선수를 뛰게 하는 방안도 있다. 신규 신평사를 진입시켜 경쟁을 촉진하는 방법도 좋다.

문제는 어떻게 ‘품질’ 경쟁을 유도하느냐다. 신용평가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 신규 신평사를 설립하도록 하면 시장 경쟁은 당연히 강화된다. 그런데 이 경쟁이 등급 평가의 정확성을 높이는 경쟁이 아니라 회사채 발행사를 향한 ‘구애 경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용평가사의 일감은 결국 발행사가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행사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신용등급을 매길 신용평가사를 선택하는 소위 ‘등급 쇼핑’이 구조화채권의 부실화를 초래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신용평가시장에서는 역으로 독점이 경쟁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준 논문이 유명 학술지에 실린 적도 있다.

발행사가 일감을 주는 구조, 즉 발행사가 수수료를 지급하는 모델을 바꿔 투자자가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이 모델은 소규모 신용평가사에는 가능할지 모르나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신용평가사에 적용하긴 어렵다. 신용등급 등 신평사가 생산한 정보를 투자자 한 명이 구매해 다른 투자자와 돌려보는 무임승차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용평가시장의 특성 탓에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의 개혁이 지지부진하다. 그러나 어렵다고 개혁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제도의 근간을 잘 세워 ‘품질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오히려 한국의 신용평가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제도 개선 방안들도 많이 나왔다. 신용평가 업무의 배정을 제3의 기관이 맡도록 한다든지, 채권 거래에 대해 수수료를 부과해 신용평가사에 배분하는 등의 방안이다. 정책당국과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좋은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단순히 경쟁의 강화만을 외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보여주고 있다.

강 경 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