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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까지 내준 위기의 한국 게임산업, 반격 가능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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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18면

미국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1인칭 슈팅 게임(FTS) ‘오버워치’가 출시 30일만인 22일 한국 온라인 게임 점유율 1위에 올랐다. 204주간 왕좌를 지킨 미국 라이엇게임즈의 전략 역할수행게임(RPG) ‘리그오브레전드’(LOL)를 밀어낸 것이다. 오버워치가 ‘마의 점유율’인 30%를 넘어서는 것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지난달 24일 출시된 오버워치의 기세는 처음부터 매서웠다. 출시 첫날 점유율 11.67%를 기록하며 바로 3위로 올라왔다. 3일 만에 11년차 장수 게임 서든어택(넥슨지티)을 끌어내리고 2위에 올랐다.


오버워치의 성공은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의 블리자드가 내놓은 신작인데다가 시험서비스 기간 중 전 세계 970만명이 참여해 블리자드의 기존 기록을 갈아치웠다. 예약판매도 순식간에 매진됐다. 그럼에도 이 정도의 상승은 예측을 뛰어넘는다. 블리자드는 오버워치로 한달 만에 세계에서 6900만 달러(약 31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나름 게임 강국으로 자부심을 지켜온 한국이 안방에서도 맥을 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버워치와 LOL, 두 온라인 게임이 PC방 점유율의 절반을 훌쩍 뛰어 넘고 있다. 1~5위 중 한국 게임은 ‘서든어택’(3위)이 간신히 체면을 지키고 있다. 4위 ‘피파온라인3’는 넥슨이 유통하고는 있지만 세계 4위 게임업체인 일렉트로닉아츠(EA)에서 만들었다. EA역시 지난해 기준 매출 45억 달러, 사용자 3억 명에 달하는 미국 게임사다.


1991년 UCLA 졸업생 3명이 만든 블리자드의 지주회사인 ‘액티비젼 블리자드’는 블리자드 외에도 모바일 게임 ‘캔디크러시 사가’를 만든 킹닷컴을 비롯해 여러 게임스튜디오를 갖고 있는 게임분야의 거물이다. 2006년 설립된 라이엇게임즈는 2009년 서비스를 시작한 LOL 하나로 연간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핀란드 수퍼셀, 모바일 게임 4개로 3조 매출미국 업체들의 각축으로 보이지만 두 업체는 모두 중국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텐센트와 연결돼 있다. 텐센트는 2013년 블리자드가 프랑스 미디어 그룹 비방디로부터 지분을 다시 사들여 독립하는 과정에서 블리자드의 지분 12%를 취득했다. 라이엇게임즈는 2011년 지분 전액을 텐센트에 넘겨 텐센트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미 세계 게임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절대적이었던 텐센트는 이달 22일 핀란드 모바일 게임업체 수퍼셀까지 전격 인수하면서 정점에 올랐다. 텐센트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보유한 지분(73%)을 포함한 수퍼셀 지분 84.3%를 86억달러(약 10조원)에 사들였다.


2010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설립된 수퍼셀은 국내에서도 인기있는 모바일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CoC)’을 만들었다. 본사를 포함해 서울·샌프란시스코·도쿄 지사 직원 180명이 클래시 오브 클랜과 ‘헤이데이’‘붐비치’‘클래시 로얄’ 등 4개의 게임만으로 지난해 전 세계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시장에서 가장 많은 매출(약 2조7450억원)을 올린 알짜배기 회사다. 이번 인수로 수퍼셀은 중국 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게임 안에서 구매 시스템을 텐센트의 결제 사업과 연계하면 중국 내 수익을 더욱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대신 텐센트는 온라인·모바일 게임 유력사를 골고루 갖게 돼 앞으로 위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텐센트는 2014년엔 미국 모바일 게임업체 글루모바일에도 1억26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수퍼셀과의 협상에서 텐센트는 게임사의 자율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텐센트는 앞서 라이엇게임즈 인수에서도 자율성을 약속했고 이를 잘 지켜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텐센트가 최근 프랑스 광고 에이전시 퍼블리시스와 루이비통 등을 갖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기업 LVMH와 마케팅 파트너십을 맺는 등 광고 분야에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내 결제시스템에서 매출을 올려온 수퍼셀의 수익모델이 바뀔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시장조사업체 뉴주(Newzoo)는 “수퍼셀 인수로 텐센트는 전 세계 게임 시장의 13%(111억달러)를 차지하게 됐다”며 “그 동안 중국 외 시장에서는 매출 성장에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이 문제를 이번 인수로 단번에 해결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텐센트의 올해 1분기 게임 부문 매출은 171억 위안(3조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 성장했다. 텐센트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게임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서든어텍2, 리니지 이터널 등 국산 신작 관심한국 게임업계도 중국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 게임업체들과 협력은 필수다. 이 때문에 국내 주요 게임업체에 텐센트가 관여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텐센트는 지난해 국내 모바일 게임 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한 넷마블게임즈의 지분 25%를 사들여 3대 주주가 됐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운영하는 카카오의 3대 주주(8.3%)이기도 하다. 비공개 투자까지 포함하면 한국 게임 업체의 상당수가 ‘텐센트 우산’ 아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텐센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사실상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외견상 한국 게임의 위기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과열경쟁을 털고 신흥 해외시장에서 성과가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낙관론이다. 오버워치의 성공은 그동안 모바일에 쏠렸던 게임사들의 관심을 다시 온라인으로 되돌리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슈팅게임의 유효기간이 다했다는 편견을 깨고 ‘재미만 있으면 무엇이든 통한다’는 점을 보여줘 특정 장르 편중, 특정 플랫폼 집중 현상도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게임업체들은 극심한 모바일 게임 전쟁을 치렀지만 승자는 극히 일부였다. 김학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1분기 국내 중심의 모바일 게임업체는 대부분 실적 감소를 기록했다”며 “이는 해외 업체들의 선전이 맞물린 결과이긴 하지만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 성장성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명 연예인을 기용해 성공한 클래시 오브 클랜(리암 니슨), 캔디크러시 사가(무한도전 멤버)가 촉발한 A급 광고모델 전쟁에 참여해 거액의 마케팅 비용을 쓰고도 실패하는 모바일 게임들이 속출하면서 개발 전략과 마케팅 전략도 현실화되고 있다. 김창현 엔씨소프트 팀장은 “지난해 한참 게임업계의 모바일 퍼스트가 강조됐지만, 모바일 시장도 온라인 못지 않게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던 중 오버워치가 웰메이드 게임은 어느 플랫폼에서나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오버워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국내 게임사들이 어떤 대응을 보여줄지가 올 하반기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게임 ‘빅2’ 중 넥슨은 지난해 중소개발사가 만든 모바일 게임의 유통사 역할을 하며 인수합병(M&A)에 집중해왔다. 올 상반기에는 ‘진경준 게이트’까지 겹치는 악재를 만났다. 다음달 6일로 예정된 ‘서든어택2’ 출시가 분위기 반전에 기여할지가 주목된다. 국내 FTS 장르 1인자 자리를 지켜오다 오버워치의 충격파를 맞은 상황이라 같은 쟝르에서 직접 대결을 통해 반등의 계기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24일 현재 서든어택2의 사전등록자는 29만명을 넘겼다. 서든어택2로 안방 되찾기에 기여할 수 있을지가 업계 관심사다.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대응에 한발 늦었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전화위복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러서 있었던 덕에 ‘리니지’와 ‘블레이드 앤 소울’ 등 주력 게임에 충실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대신 모바일 서비스 경험이 없고, 모바일 유저를 확보하지 못한 점은 앞으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반기 중 리니지 세계관을 이어받은 모바일 게임 2종을 출시할 계획인데 어느 정도 반향을 일으킬지는 미지수다. 내년 중엔 리니지2 이후 5년 만에 새 온라인 게임 ‘리니지 이터널’을 시작할 예정이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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