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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등 찍은 캐머런 “10월 사임”…차기 총리로 뜨는 존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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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새 지도자가 필요하다.”

캐머런, 작년 총선 때 국민투표 공약
당내 갈등 봉합하려다 국가 분열
존슨, 탈퇴진영 이끌며 스타 떠올라

24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가 확정된 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민이 다른 길을 택했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몇 주, 몇 달은 총리로서 (정국) 안정을 위해 일하겠지만 난 새 목적지로 가는 데 적임자가 아니다”고 했다. 10월 초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새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만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룻밤 사이 급전직하했다. 개표 직후엔 브렉시트 진영에 합류했던 보수당 의원 84명이 캐머런 총리에게 ‘충성 서한’을 보냈다. 탈퇴 운동을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과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등 탈퇴파 의원 6명도 연대 서명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국민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총리는 나라를 계속 이끌고 우리 정책을 이행하는 국민의 위임과 의무 모두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가 여러 차례 말한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이 오갈 땐 여론조사 수치들이 잔류를 가리키고 있을 때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는 그의 판단 잘못에서 비롯됐다. 사실 이번 국민투표는 국민 여론이 원하는 바라고 보긴 어렵다. 1980년대 이래 보수당 내 누적돼 온 EU를 둘러싼 분열에다 영국독립당(UKIP)의 부상과 맞물리자 캐머론 총리 자신이 2013년 초 정치적 카드로 제안했다. 75년 유럽경제공동체(EEC·EU의 전신) 잔류를 두고 내분을 겪던 노동당의 해럴드 윌슨 총리의 선례를 따른 것이다. 그는 지난해 총선 때 “EU와 재협상을 한 뒤 2017년 말까지 국민의 뜻을 묻겠다”는 공약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가 “당내 갈등 봉합을 국가의 미래보다 우선시한 캐머런 총리의 판단 때문에 영국이 큰 타격을 받게 됐다”고 비판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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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에 사람도 놓쳤다. 올 초만 해도 브렉시트 운동을 이끄는 건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 나이절 패라지 대표였다. 한때 상승세를 탔다곤 하나 지난 총선 과정에서 영향력을 잃었던 이였다. 캐머런 총리는 하지만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고브 장관과 대중적 호소력을 가진 존슨 전 런던 시장이 탈퇴 진영으로 넘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다. 두 사람이 공식 탈퇴 운동을 이끌게 되면서 브렉시트 캠페인의 질과 신뢰성이 확 달라졌다. 이들 둘은 이번 과정을 거쳐 잔류 진영의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과 함께 차기 총리 후보가 됐다. 특히 존슨 전 시장은 캐머런을 이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부각됐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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