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혼자 치안맡던 시대 지났다"|박배근 치안본부장이 말하는 「경찰4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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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배근 치안본부장은 한달 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추석과 IBRD· IMF총회를 앞두고 전국경찰에 비상근무령을 내린게 지난달 20일. 지난15일로 비상근무령을 해제해놓고도 그는 계속 집무실에서 잠을 자고있다.
정부종합청사 15층 1501호실이 지난 한달 동안 그의 주거지.
『고생스럽겠다』 는 위로의 말에 그는 『산이나 바다 또는 낙도에서 밤잠을 못 자는 경찰가족들에 비하면 편한 셈』 이라 했다.
『창설 40주년을 맞는 경찰에 축하를 보낸다』 고 했을 때도 그는 축하 받을 일보다 빈축을 살 일이나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며 겸손해 했다.
-창설 40주년이면 사람으로 치자면 원숙한 장년기에 접어든 셈인데 실제로 우리 경찰이 장년에 걸맞게 원숙해졌다고 보십니까.
▲제가 스스로 평가를 한다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만 어느 정도 기틀은 잡혔다고 봅니다. 그러나 미흡한 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특히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치안수요는 날로 늘어가고 손 쓸곳은 많아지는데 인력이며, 장비며 모든 면에서 모든 국민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에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아래서 최선을 다하고는 있다고 봅니다.
-경찰에 대한 국민의 가장 큰바람은 불안을 느끼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들어 국민들이 좀 불안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
▲사회전반적으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이상가치관이 팽배해지면서 가정파괴범이 생겨나고 범죄수법이 잔인해지는 등의 새로운 범죄양상 때문에 그렇게들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범죄건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컨대 강력사건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 4천52건이 발생했읍니다만 올 상반기에는 3천9백47건이 발생, 2·6%가 줄어들었습니다.
-신고되지 않은 사건, 다시 말해서 묻혀버린 사건이 많이 발생건수가 줄어든 건 아닐까요.
▲신고를 안한 경우가 있다면 그야 지난해 상반기에도 마찬가지 아니었겠읍니까.
경찰로서는 모든 사건을 신고해주기 바라는 입장이고, 최근 신고자의 신분을 철저히 보호하라고 지시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학생시위, 민원인 집단행동진압 등으로 경우에 시달려 쓰러지는 경찰관들이 잇따르고 있다는데 근본적으로 경찰인력이 부족한 게 아닙니까.
▲태부족이죠. 쉬운 예로 경찰관 1명이 맡고있는 주민수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읍니다. 프랑스가 2백78명이고 미국이 3백94명, 영국이 3백98명, 일본이5백51명인데 비해 우리는 6백96명이나 됩니다. 게다가 우리는 남북이 대치하고있는 특수여건 때문에 경찰이 대공쪽에도 남보다 많은 신경을 쓰고있는 실정입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경찰관 순직자 수도 해마다 늘어 82년의 40명에서 83년 45명, 84년 52명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고 올 들어서도 8월말 현재 벌써 47명이나 과로 등으로 순직했읍니다.
-결국 인력이 보강돼야 한다는 결론인데 구체적인 계획은 있읍니까.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인력보강에 이상과 현실이 있습니다. 경찰만을 생각하면 만점 치안을 위해 인력을 지금의 2배쯤으로 늘리고 싶지만 예산확보 등 현실적으로 뒤따라야할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경찰로서는 인력증원 5개년 계획을 세워 조금씩이나마 인력을 보강해가려고 관계부처와 협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86, 88이란 큰 행사를 앞두고 인력을 늘리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는 관계부처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범죄소탕 1백일 작전이다, 뭐다 해서 많은 단속령이 내려져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시위진압과 각종 행사, 요인경비다 해서 거의 매일 많은 경찰이 동원돼 심지어는 파출소가 피습되기로 하는 것이 현실인데 인력이 늘어난다고 경찰 고유업무에 보탬이 되겠습니까.
▲올해 안으로 올림픽경비대가 창설되고 대공· 수사요원 등이 보강될 예정이어서 사정이 많이 나아지리라고 봅니다. 예컨대 경비요원은 경비업무에만 전념토록하고 우선 서울· 부산 등 6대도시에 대해서는 파출소에 형사들을 상주시켜 경미한 사건은 경찰서에까지 오지 않고 파출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장비도 문제 아닙니까. 범인은 자동차로 달리고 경찰은 맨발로 뛴다고들 비유하고 있는데….
▲매년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습니다만 아직도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특히 88에 대비해 추진하고 있는 C3제도 (Command·Control·Communication, 범죄신고 즉응제도) 가 완성되면 현재의 신고출동시간 25분이 5분으로 단축될 것입니다.
-국민의 큰 관심거리 중의 하나가 교통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특히 세계 제1의 교통사고다발국이란 오명을 지니고 있는데….
▲교통사고의 90%이상이 운전부주의, 다시말해 질서를 지키지 않은데서 비롯되고있고 특히 대도시에서의 버스· 트럭 등 대형차량의 난폭운전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읍니다. 그 동안 경찰은 버스에 대해 대중교통수단이란 점을 감안, 단속에서 다소 융통성을 둔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제는 서울· 부산의 경우 지하철의 개통으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대각선 주차나 끼어 들기·과속·난폭운전 등 사고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는 위반사례에 대해서는 뿌리를 뽑아 거리질서를 확립하겠습니다 .트럭의 난폭운전도 예의일수는 없습니다.
-그 동안 경찰이 모자라는 인력과 장비로 애를 써봤고 앞으로도 86, 88의 큰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더 힘든 일이 예상되는데 사기를 높여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경찰총수로서 항상 부하들의 노고에 고맙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경찰의 직제를 개편해 전체 경찰의 사기를 높일 수 있도록 현재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밖에 수사비나 외근활동비등도 한푼이라도 더 올려주기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 중에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텐데….
▲경찰만이 치안을 맡던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국민여러분들이 밤잠을 자지 말고 문 앞에서 도둑을 지키고 잡아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위의 범법자 1명을 신고하는 것을 자칫「밀고」로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읍니다만 사실은 시민정신에 입각한 그 신고 하나 하나가 사회전체를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기본 요소가 된다는 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오홍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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