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배 뛸 땐 좋았는데…밀양·가덕 부동산 투자자들 패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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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하남읍 부동산사무소 밀집지역. 신공항 유치 실패 이후 손님이 줄어 한산하다. [사진 송봉근 기자]

23일 오후 경남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하남읍사무소 앞. 이곳에서 신공항 후보지로 거론됐던 백산리로 가는 왕복 2차선 도로 양 옆에 부동산 사무소 20여 개가 들어서 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이 거리는 땅을 사러 온 외지인들로 북적거렸다.

밀양 하남 부동산중개소 20곳 밀집
“외지인 하루 수십 명 오다 딱 끊겨”
“발표 직전 팔아” 한숨 돌린 주민도

그러나 정부가 김해공항 확장을 발표한 이틀 뒤라서 그런지 찾아오는 차량도 사람도 보기 힘들었다. 현지 부동산에는 땅값 폭락 여부를 묻는 전화가 잇따랐다.

H공인중개사무소의 사무장은 “지난 석 달간 하루에도 수십 명이 찾아왔는데 신공항 탈락 뒤에는 찾아오는 투자자는 없고 오히려 앞으로 땅값이 어떻게 될지 전망을 물어보는 전화만 온다”고 말했다. D부동산 사무장은 “신공항 기대감으로 2~3배 이상 비싸게 땅을 산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밀양 주민 신모(82)씨는 “정부 발표날 오전에 평(3.3㎡)당 30만원에 400평(1320㎡)의 논을 부산 사람에게 팔았다”며 “하루 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밀양의 토지 거래는 2011년 4446건(1837만㎡)에서 지난해 5968건(2732만㎡)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5월 말까지만 2441건(844만㎡)이 거래됐다.

밀양시 하남읍은 정부의 30대 국책사업에 신공항이 포함된 2008년부터 땅값이 요동쳤다. 3.3㎡당 10만원 이하이던 농지는 2010년 13만~15만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이듬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하면서 다시 10만~12만원으로 내렸다.

그러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신공항이 다시 포함되면서 가격이 또 들썩였다. 올 초 20만원까지 올랐던 가격은 4~6월에 “신공항이 밀양에 온다”는 소문까지 보태져 30만~35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래도 매물이 없을 정도였다.

서울·부산·대구·창원 등 외지인들이 몰려들면서 감자·양배추·연근 등 농사일을 하는 이곳 주민들 사이에서도 “뭐 하노. 땅 안 사고~.” “아직 안 샀는교~”라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분위기도 밀양과 비슷했다. 최근까지 천성동 일대 7~8곳의 부동산에는 찾는 사람이 많았다. 도로변에는 하루가 다르게 원룸·상가·다세대주택 등이 새로 들어섰다. 그러나 기자가 찾아간 이날은 극히 한산했다. 한 부동산 사무소장은 “며칠 전만 해도 땅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신공항 발표 이후 거래는커녕 사람들 발걸음도 끊겼다”고 말했다.

천성동 자연녹지 546㎡는 지난달 3억원에 거래됐다. 3.3㎡당 181만원 수준이다. 2006년 자연녹지 매매가가 47만6000원 선이었으니 10년 만에 세 배 이상 오른 셈이다. 주거용지도 2014년 말 3.3㎡당 150만원에서 지난해에 200만원까지 올랐다.

올해 들어서는 3.3㎡당 최고 300만원까지 거래됐다. 신공항 효과로 인해 강서구의 상업지역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2012년 3.3㎡당 500만원 정도에서 지난달에 1000만원 선까지 올랐다. 가덕도 천성동 토지 거래는 2011년 76건(3만4168㎡)에서 2015년 185건(9만4954㎡)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도 지난달까지 67건(5만598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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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대 정상철(부동산학) 교수는 “영남권에 신공항만한 개발 호재가 없어 그동안 밀양과 가덕도에 엄청난 자금이 몰렸을 텐데 백지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매수자들이) 사실상 패닉 상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남부권 신공항 범시·도민 추진위원회는 25일 오후 5시 대구 동성로에서 신공항 백지화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강주열 위원장은 “밀양과 가덕도 중 점수가 높은 밀양 대신 김해공항 확장으로 바뀐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밀양·부산=홍권삼·위성욱·강승우 기자 we@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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