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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은 환자도 의사도 속 상하는 일이지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14호 수술실, 다음 수술 환자가 도착할 때 까지 전임의 (fellow) 닥터 김과 수술할 환자의 영상자료를 보며 얘기를 나눈다.

"다음 환자는 왼쪽 옆목 림프절 레벨3에 재발한 환자다. 2011년10월 28일에 갑상선 전절제 + 중앙경부 림프절 청소술하고

방사성요드 치료를 두번 (고용량130mCi, 저용량 30mCi)이나 했던 환자인데 거의 6년 째인 지난 2월중에 림프절 2개에 재발이 발견된 케이스지.

어제 병실 회진 때 재발 수술 설명할때 남편 얼굴 봤어? 와이프가 안스러워 눈 자위가 벌겋게 된 것 말이야.

환자 입장에서는 몹시 속 상하는 일인데도 웃는 얼굴로 의료진을 맞이하는 건 싶지 않을 텐데 말이지....옛날 수술할 당시의 영상을 다시 복습해보자. 혹시 그 때 옆목림프절 전이를 놓쳤는지 ..."

"그때는 괜찮았는데요"

"그렇지? 지금 봐도 그 때는 괜찮은 것 같아, 그때 갑상선암의 사이즈도 0.57cm으로 아주 작은 미세암이어서 반절제를 계획했는데 그만 중앙림프절에 0.5cm크기의 전이가 발견되어 전절제를 했었지.그때도 심한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재발이 되니까 사람 미치게 한단 말이야.."

"왜 이런 경우에도 재발이 될까요?"

"아마도 그 당시에 초음파나 CT스캔에 보이지 않던 미세한 전이가 이제 나타난 것이라고 봐야지.

그 당시 갑상선암의 위치가 왼쪽 갑상선의 꼭데기 있었는데 이 위치의 암은 옆목림프절로 바로 전이가 되는 특징이 있긴 하지...

깨알 같이 작은 암도 이 위치에 있으면 옆목림프절로 암세포가 빠져 나갈 수 있거든...."

이윽고 환자가 수술실로 옮겨져 온다. 미인형이면서 선한 인상이다.

"어제밤 잠은 잘 잤어요?.속이 상해서 잠이나 왔겠나..."
"아뇨, 잘 잤어요"

"남편분께서 어제 와이프를 몹시 안스러워 하던데?

"잠 잘 자던데요, 근데 수술실 들어 올 때는 좀....."

"수술은 위험 한 것 아니니까 안심하시고......간단히 잘 끝날 겁니다. 하 ~, 절개선이 옆으로 좀 확대 될텐데...

지나번 상처가 예쁘게 나아서 좀 아깝다. 나중에 레이져 치료 받지요 뭐.

근데 요즘 일부 비갑상선 전문의사가 갑상선암은 증상이 없거나 만져지지 않으면 진단도 수술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아이, 말도 안되는 소리죠"

그렇다, 이 환자를 봐도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작은 미세암인데도 이렇게 퍼지고 재발하고 하는데 말이지.

손 소독대 앞에서 레지던트 닥터 박이 안되었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 교수님, 아까 마취 준비실에서 환자분이 울던데요"

"자네라면 이런 상황에 눈물 안나겠어? 재발은 환자도 의사도 속 상하는 것이지"

환자가 마취에 들어가고 난 후 수술조수인 닥터 김과 얘기한다.

"암 전이 된 부위를 찾는 영상 검사에서 무슨 주사를 딱 놓고 사진 찍으면 전이부위가 파랗게 착색되는 뭐 그런 방법이 개발되면 얼마나 좋겠노. 수술할 때 착색된 부위만 삭삭 도려내면 되니까 말이지"

"얼마 안가 개발되지 않겠어요. 일부 실험동물에서는 가능했다는 소리도 있던데요"

"한동안 갑상선암부위에 블루다이(blue dye)착색액을 주사해서 감시림프절(sentinel node)의 전이 여부를 알아보는 방법을 시도해 본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시들해진 것 같아. 실용성이 없어서 말이야. 그래도 유방암에서는 아직도 쓰고 있지 아마"

환자의 왼쪽 옆목림프절 청소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한시간도 안 걸려 어렵지 않게 끝난다. 암의 전이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술은 수술이니까 며칠은 고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겨운 방사성요드치료를 또 해야 할 것이다.

마취 회복실로 가보니 환자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수술 캪을 쓰고 있는 모습이 참 앳되어 보인다.

근데 연령 표시란에 사십 몇세라고 표시되어 있다.
"어? 36세가 아니고?"

회복실 간호사도 한마디 거든다.
"40대라니 믿기지 않아요, 참 동안이세요"

"36세는 저번 수술 때 나이이지요, 초등학교 학생이 둘이나 있는데요"

나이보다 동안인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도 동안인 만큼 선해서 외모도 그렇게 보여질지 모른다.

병실 회진을 가서 환자와 남편에게 오늘 수술한 내용과 앞으로 치료 계획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해 준다.

마음속으로야 불편한 점이 많겠지만 의료진에게는 신뢰의 마음을 보내 온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병실 밖까지 따라나오며 배웅해주는 훤칠하고 미남형인 남편분도 재발해서 미안해 하는 필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네네, 별 탈없이 잘 회복하실 겁니다. 이젠 정말로 재발 없이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두 부부의 심성으로 보아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비록 한번의 재발은 있었지만.....미소 노란동글이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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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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