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수퍼셀의 몸값에 가려진 핀란드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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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
경제부문 기자

‘클래시 오브 클랜’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슈퍼셀이 21일 중국 인터넷 기업 텐센트에 팔렸다. 인수가는 86억 달러로 알려졌다. 2010년 설립된 슈퍼셀은 세계 모바일 게임 1위 업체다. 지난해 매출만 24억 달러에 이른다. 스타트업계의 신화다. 모바일 게임계의 또 다른 강자인 ‘앵그리버드’를 만든 로비오도 핀란드 회사다.

슈퍼셀과 로비오와 같은 유망 스타트업은 노키아의 몰락 이후 휘청대는 핀란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무너진 노키아가 뿌린 씨앗이 벤처와 창업 붐을 일으키며 핀란드 경제를 새로운 부흥으로 이끈다는 분석도 나왔다. 슈퍼셀의 엄청난 몸값은 장밋빛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핀란드 경제는 여전히 위기다. 한 때 강소국으로 불리던 핀란드가 유로존의 새로운 병자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에 따르면 핀란드 경제는 2012~2015년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BMI 리서치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핀란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9%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1997~2007년 연평균 4%의 성장을 구가하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핀란드가 병든 가장 큰 이유는 노키아의 몰락이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40%를 장악했던 노키아는 한 때 핀란드 GDP의 24% 이상을 담당했다. ‘노키아=핀란드’였다. 하지만 휴대전화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노키아가 시장에서 밀려나며 핀란드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결국 노키아는 2013년에 마이크로소프트(MS)에 휴대전화 사업부를 팔았다. 뿐만 아니다. 온라인 산업의 성장 속에 종이 소비가 줄며 핀란드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인 제지업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주력 산업의 부진으로 핀란드의 실업률은 10%대에 이를 정도다.

핀란드의 상황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대기업 의존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명목 GDP(1조4169억 달러)에서 삼성전자 매출(1959억 달러) 비중은 13.83%에 달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도 휘청대고 있다.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창업을 통한 신성장동력을 찾는 한국에 핀란드의 성공한 스타트업은 매력적이다. 문제는 새싹 기업이 기존 산업을 대체하고 얼마나 빨리 충분한 일자리를 공급할 수 있느냐다. 핀란드의 시련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하현옥 경제부문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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