젱킨즈 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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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주 서울에서는 세계유수의 금융인들이 모여 보호주의와 외채위기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개선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거의 같은 시간에 미국 워싱턴에서는 개발도상국들로부터의 섬유수입쿼터를 대폭 삭감하기 위한 이른바 젱킨즈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이 두 회의의 상반된 결과는 서로 다른 배경과 과정, 서로 다른 목표를 갖고 있으면서도 세계경제에 미칠 파급도에서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거의 같은 효과를 지닌다. 서울총회는 비록 합의된 처방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진단의 합의는 쉽게 만들었다.
그것은 보호주의와 외채위기의 직접적 상호 연관성이었다. 24개 개도국그룹들은 물론 거의 전회원국들이 현재의 외채위기가 쌍무적당사군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해결불가능하고 국제고금리와 보호주의가 외채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런 연관된 문제들의 해결여부가 앞으로의 세계경제향방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도 쉽게 동의되었다.
미국의회는 이같은 세계경제의 위기에 대한 인식에서 의도적으로 둔감하기로 결정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회에 계류중인 보호입법안만도 3백여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통과된 젱킨즈법안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고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법안이 유달리 대개도국무역의 가장 전형적인 상품, 섬유류의 수입규제를 목적으로 한 점에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섬유무역은 선진국의 단골이론인 비교우위론에 비추어서도 가장 대표적인 개도국경쟁상품이다. 그것마저도 수입규제, 그것도 가장 거친 형태의 쿼터삭감으로 대용하려는 것은 지나친 보호주의가 아닐 수 없다. 두말할 필요없이 이 법안은 다자간섬유협정을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쿼터제를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쌍무적 협정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이 법안이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섬유수입쿼터를 84년도 기준으로 삭감할 경우 35%이상의 수입감소가 예상되는데 이는 우리의 경우 연간 10억달러 가까운 수출감소를 의미한다. 이같은 타격은 우리뿐 아니라 대미섬유수출 비중이 높은 대만·중공·홍콩 등 동남아 개도국들에 공통된 것이다. 이들 나라의 섬유산업 비중과 고용기여도를 고려할 때 이같은 대폭적인 수입규제가 초래할 충격과 영향은 극심할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섬유노조가 이 법안의 부당성을 강력히 항의하는 성명서를 미측에 전달했고 섬유산업연합회에서도 같은 처지의 개도국들과 공동보조를 취하기 위해 민간개도국 공동체구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이같은 개도국들의 섬유수출봉쇄가 가뜩이나 심각한 외채문제해결에 결정적인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따라서 이 법안의 최종확정은 미국과 개도국 어느 쪽에도 유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젱킨즈법안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보호주의 역시 같은 이유로 철회돼야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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