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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GE식품 기준 강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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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 유전자 조작(GE) 식품 반대운동을 펼치는 미국 전문가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미국의 어느 모임에서 한국의 밀 수입업체 대표가 "한국의 소비자 단체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유전자 조작 밀의 수입은 안 하겠다"고 발표했다며 당신들의 역할에 커다란 박수를 보낸다는 편지였다.

미국 밀 수출의 5%를 차지하는 한국 밀 수입업체의 의견은 미국 밀 수출업자에게 매우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미국의 GE 밀 생산은 소비자 .환경 시민단체의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매일 밀가루 음식을 먹어야 하는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GE 콩.옥수수 등의 농산물에 비해 GE 밀의 생산은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농약 행동망, 그린피스, 지구의 친구들, 소비자 단체 등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이 연합해 캘리포니아 의회에서 행하는 상업적 생산 승인 여부 투표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반대운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밀 수입을 많이 하는 한국 소비자단체도 반대 의견을 미국 의회에 보내고, 우리 밀수입협회와도 협의했던 것이 미국의 양심 있는 전문가와 시민단체에 감동을 준 것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이미 몇년 전부터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회의가 열렸던 시애틀에서 유럽 국가들이 "딸기에 넙치 유전자를 넣은 것이 어떻게 안전할 수 있느냐"며 안전성을 문제삼자 미국은 유럽의 광우병을 빌미로 유럽 식품의 수입을 금지한다는 엄포를 할 정도로 심각한 무역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수년간 유전자 조작 식품을 금지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유럽연합(EU)이 미국의 강력한 압력에 굴복해 결국 모라토리엄을 풀었다. 그러나 수출하기 전에 수입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GE 농산물 비중이 0.9% 이상인 식품은 용기에 분명히 표시해야 하며, GE 식품의 생산.유통 등 모든 과정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사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GE 농산물을 생산하려면 GE 종자를 농민이 매년 사야 한다. 이런 경제적 부담보다 더 큰 문제는 환경과 인간 건강에 미치는 위험들이다.

알레르기를 일으켜 식용으로 인가되지 않은 스타링크 옥수수가 여러 다른 식품에 들어간 것이 발견돼 전부 리콜해야 했고, 얼마 전에는 돼지 백신을 생산하는 '프로디진'에 의해 변형된 GE 옥수수가 미국 네브래스카와 아이오와주에서 옥수수와 콩 식품 농산물을 오염시켜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료용 스타링크 옥수수를 수입식품 회사들이 식용으로 둔갑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데 GE 식품에 관한 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아주 모호하다. 미국 정부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와 관련한 책임은 제조회사에 있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데도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몬산토 등 회사들이 제출한 서류만으로 안전하다고 인정해주는 우를 범하고 있다.

GE 비중 3%까지는 GE 농산물 표시가 면제일 정도로 기준도 헐렁하다. 그나마 표시제도도 수입.생산.판매자에게만 이롭도록 만들어 정작 소비자들은 유전자 조작 식품을 먹으면서도 먹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러니 국제적으로 '한국민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실험대상'이라는 조롱을 듣지 않는가.

정부는 소비자 안전을 위해 이제라도 국제적으로 정해지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 안전성 테스트를 실시하고, GE 함유 비중 표시기준도 0.9%로 내려야 한다.

표시제도도 소비자가 알기 쉽게 고쳐야 한다.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는 소비자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을 먹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과연 정부는 알기나 하는가.

김재옥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회장